176석 거여, 부동산법 11개 단독처리

중앙일보

입력 2020.07.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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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야당의 자리는 없었다. 176석의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사실상 단독으로 상임위에서 부동산 대책 관련 11건을 포함, 법안 13건을 상정하고 의결했다. 기획재정·국토교통·행정안전위다. 상정은 법안을 안건으로 올리고 논의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날 상정에서 의결까지 걸린 시간은 60분(국토교통위)에서 7시간(기획재정위)에 불과했다. ‘강행처리’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법제사법위와 8월 4일 본회의도 사실상 여당에 의한 강행처리 수순이다. 거여(巨與)의 폭주가 헌정사를 새로 쓰고 있다.

기재·국토·행안위 총 13건 강행
법안 기습상정, 심사도 제대로 안해
야당 “법적·절차적 하자, 의회독재”

부처 업무보고, 소위 구성도 생략
기재위, 여야 개정안만 44건인데
발의한 의원 제대로 설명않고 표결
“여당은 오판, 야당은 전략부재”

통합당은 “의회민주주의가 오늘 사망했다”(류성걸)고 비판했다. 통합당 기재위원들은 “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정권의 입맛에 맞는 법안만 표결처리하겠다는 것은 국회를 문재인 정권의 거수기, 하수인으로만 바라보는 여권의 안하무인식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행안위 의원들도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군사작전하듯이 밀어붙이겠다는 정부 여당의 행태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최대 격전지는 부동산 관련 세법을 다루는 기재위였다. 소득세법·법인세법·종합부동산세법 등 7·10 부동산 대책의 후속 입법이 쟁점이었다.

부동산법 6건 상정·의결에 60분, 토론하자는 야당은 묵살

28일 거여(巨與)의 입법 독주는 상임위 곳곳에서 충돌을 낳았다. 이날 국토교통위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간사(오른쪽)와 이헌승 미래통합당 간사가 의사진행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거여(巨與)의 입법 독주는 상임위 곳곳에서 충돌을 낳았다. 이날 국토교통위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간사(오른쪽)와 이헌승 미래통합당 간사가 의사진행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법안소위 구성에 합의하지 못하자 민주당은 곧바로 소위 단계를 건너뛰고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기습 상정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시급하다”며 법안 상정을 위한 서면동의서를 제출했고, 양경숙 민주당 의원이 동의했다. 민주당 소속 윤후덕 기재위원장은 이를 기립 표결에 부쳤다. 재석 26명 가운데 통합당 소속 9명을 제외한 17명이 찬성했다. 장혜영(정의당)·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도 법안 상정엔 찬성했다. 이에 통합당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맞섰다. 서면동의서에 기재된 소득세·법인세·종합부동산세 일부 개정안이 어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인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게 근거였다. 이날 기준으로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소득세법(19건)·법인세법(11건)·종합부동산세법(14건) 개정안은 총 44건에 달했다. “44건 중 어느 법안인지 특정되지 않았으니(‘백지’) 적법한 법안 상정이 아니다”는 게 통합당의 주장이었다.

이후 통합당 의원들은 “청와대 하명에 여당 의원들이 허수아비로 전락했다”고 비판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법대로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맞받았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면서 회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었다.

기획재정위에서 민주당이 부동산 세법안의 상정을 강행하자 김태흠 통합당 의원이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기획재정위에서 민주당이 부동산 세법안의 상정을 강행하자 김태흠 통합당 의원이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기재위 소속 통합당 의원들은 전체회의가 정회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의원의 법안인지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백지 표결’을 강행 및 의결한 것은 분명한 법적 하자”라고 주장했다. 김태흠 통합당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의회민주주의를 의회독재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에 개의치 않고 오후 6시쯤 법안을 모두 의결했다. 서면동의서 방식으로 법안이 상정된 지 단 7시간 만이었다.

절차적 하자가 있는지를 놓고 국회사무처 직원들도 갑론을박을 벌였다. 서면동의서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표결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의견과 기재위원장이 구두로 “고용진 의원 법안”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이 지방세법 개정안 통과를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이 지방세법 개정안 통과를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날 국토교통위에서도 전·월세 신고제, 분양가상한제 등 부동산 관련 법안 6건을 의결했다. 법안을 상정하고 의결하는 데까지 모두 6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통합당 의원들은 의사진행에 반발, 집단 퇴장했다. 그 사이 두 차례 정회가 있었다. 통합당에선 “선입선출 원칙이 있는데 통합당에서 똑같이 올린 법안이 있는데 병합심사도 없이 여당 법만 심의하고 있다”(이헌승), “소위를 구성해 여야 합의해야 하는데 소위 구성도 없이 통과시키려 한다”(송석준)며 항의했다. 이에 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과 국민 불안감이 극심하다”며 “하루빨리 후속 입법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맞섰다. 민주당 소속인 진선미 위원장은 “의원끼리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급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이 있다. 시급할 때는 업무보고를 서면으로 대체한 적도 있다”며 상정과 의결을 강행했다.

이날 오후 2시 열린 행안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합당 의원들이 일방적인 회의 진행에 퇴장한 가운데 진행된 회의에선 지방세법·지방특례제한법 등 7·10 부동산 대책 후속 세법과 정부조직법·재난안전관리기본법이 처리됐다. 회의장에서 법안 심사에 들인 시간은 66분에 불과했다.

28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 13건

28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 13건

민주당의 드라이브는 이날 아침 이미 예고됐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신속한 입법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시장의 혼란과 불안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집값을 안정시키고 불안심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7·10 대책 후속 입법을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회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준 힘으로 독단적 결정을 하거나 숙의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여당이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법안은 한번 처리하면 다시 바꾸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충분히 논의해도 되지 않았느냐”며 “입법 공청회도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이 대책이 작동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표결하면 지니까 그냥 퇴장하는 전략이 과연 야당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당은 29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이재명 “4급 이상 1채 남기고 다 팔아라”=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날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4급 이상 간부급 도청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연말까지 실거주 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모두 팔 것을 권고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택 보유 현황을 인사고과에 반영해 승진 등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이날 경기도청에서 발표한 ‘경기도 부동산 주요 대책’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공직자윤리법상 재산등록 대상자(4급 이상 공무원, 시·군 부단체장, 공공기관 임원 이상) 332명 중 2주택 이상 소유자는 28.3%(94명)다. 이런 조치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산권 침해’란 비판에 대해 이 지사는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 재량”이라고 주장했다.

박해리·정진우·하준호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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