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필요없다는데...'아베 마스크' 더 뿌린다는 日정부의 고집

중앙일보

입력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 지원을 위해 제작한 천 마스크, 일명 '아베노마스크'를 8천만장 더 배포하기로 했다. 보육권이나 요양시설 등에 나눠줄 계획이지만, 현장에서는 "필요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아사히 신문이 28일 전했다.

5700억원 예산들여 보육원, 요양시설 등에 배포 #현장에선 "쓰지도 못하니 보내지 말라" 손사래 #가정에 보낸 마스크도 '찬밥' 기부 물품으로 쌓여

최근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본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의사 진행을 지켜보는 아베 총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최근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본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의사 진행을 지켜보는 아베 총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아베노마스크' 사업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도해 시작한 천 마스크 배포 정책을 말한다. 466억엔(약 5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각 가정에 2장씩의 천 마스크를 배포했으나, '사이즈가 작다' '귀가 아프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심지어 곰팡이나 벌레가 발견돼 일부 회수되는 소동이 일며 거액의 예산만 낭비한 실패작이란 비판을 받았다.

아사히에 따르면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마스크와 모양과 소재가 똑같은 마스크를 보육원이나 요양원, 방과후 학생 모임 등에 나눠주는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예산은 504억엔(약 5700억원). 3월 말부터 현재까지 약 6000만장이 이미 배포됐고 8000만장을 추가로 나눠줄 계획이다. 정부는 6월 중순, 아직 제작 전인 천 마스크 5800만 장의 발주를 이미 마쳤다.

(‘1세대에 2매의 마스크’)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아베 정부의 마스크 배포 정책을 비판하는 SNS 패러디물. [SNS 캡처]

(‘1세대에 2매의 마스크’)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아베 정부의 마스크 배포 정책을 비판하는 SNS 패러디물. [SNS 캡처]

현장에서는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도카이(東海) 지역 보육원 원장은 아사히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비축해놓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기타큐슈(北九州)시의 한 간호사도 "정부의 천 마스크는 얼굴에 밀착되지 않아 의료용으로는 쓸 수 없다. 앞으로 더 도착한다 해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게 된 마스크 대신, 환기를 위한 공기청정기나 선풍기 등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마스크 수급은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가격비교사이트 재고속보닷컴(zaikosokuho.com)에 따르면 일회용 마스크 1장당 최저가는 4월 24~25일에 57엔(약 645원)으로 최고치에 달한 후 하락이 이어져 6월 10일에는 10엔(약 113원)까지 떨어졌다.

"생각 없이 만들어진 즉흥적 정책" 비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가 일본 전국으로 확대된 가운데 17일 오전 일본 도쿄도 주오구에서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가 일본 전국으로 확대된 가운데 17일 오전 일본 도쿄도 주오구에서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가정이나 시설에 배포된 '아베노마스크'는 기부 물품으로 인기다. 나고야(名古屋)시의 도리 치즈코(鳥居千鶴子)씨와 마에다 아키코(前田明子)씨는 필리핀에서 자선활동을 하는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천 마스크를 기부해달라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깜짝 놀랐다. 수백장 정도를 예상했지만 한 달 만에 전국에서 3만장이 넘는 천 마스크가 도착한 것. 두 사람은 6월 12일까지 모인 6만장의 마스크를 필리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홋카이도(北海道) 지부도 5월부터 도내 20개 곳에 회수함을 만들어 마스크 기증을 받았는데, 1개월 반 동안 모인 마스크 12만 1000장 중 약 9만 1000장이 정부 배포 천 마스크였다.

아사히 신문이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각 가정에 배포된 '아베노마스크'에 대해 "도움이 됐다"고 답한 사람은 15%,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답변이 81%였다. 예산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카노 마사시(中野雅至) 고베학원대교수(행정학)는 아사히에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지출은 어쩔 수 없지만, 비용 대비 효율을 착실히 따지지 않은 생각 없이 만들어진 즉흥적인 정책이 많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