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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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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캐나다 인류학자 웨이드 데이비스(67)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생이던 1982년 좀비를 연구하러 아이티를 찾았다. 그는 부두교(아프리카에서 서인도제도로 온 흑인의 민간신앙) 관계자를 조사했다. 좀비가 만들어지는 사회적, 생리적 메커니즘을 파악했다. 부두교 사제가 약물로 누군가를 가사 상태에 빠뜨린다. 죽은 줄 알았던 (그래서 장례를 치렀는데) 사람이 얼마 후 깨어난다. 약물 영향으로 자의식을 상실했다. 이성도 감정도 없는, 딱 좀비다. 사제는 그를 직접 착취하거나, 사탕수수 농장 등에 팔아 노예처럼 부리게 한다. 누군가를, 왜 좀비로 만들까.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이에 대한 사적 형벌이다. 데이비스는 1985년 이런 내용을 담은 책 『나는 좀비를 만났다』(원제 『The Serpent and the Rainbow』)를 펴냈다. (저자는 훗날 연구 과정의 과학적 오류와 윤리 위반 문제로 비판받았다.)

좀비는 공포 영화의 주요 소재다. 아예 독립된 장르가 됐다. 첫 좀비 영화는 빅터 할페린(1895~1983) 감독의 1936년 작 〈화이트 좀비〉다. 부두교 사제의 약물 마법으로 좀비가 된 남녀가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다. ‘살아난 시체’인 좀비가 사람을 공격하는 현대 좀비물과 플롯이 다르다. 오히려 데이비스의 연구 결과에 가깝다. 좀비 영화 하면 역시 조지 로메로(1940~2017) 감독이다. 현대 좀비물의 창시자다. 그 시작은 데뷔작인 1968년 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원인불명 이유로 시체가 좀비가 되고, 좀비의 공격을 받은 사람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좀비가 된다. 요즘 익숙한 그 좀비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가 개봉(15일) 열흘 만에 손익분기점인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국내외에서 흥행몰이 중이다. 연 감독은 4년 전 1157만 관객의 영화 〈부산행〉에 이어, 좀비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시즌 2까지 제작된 좀비 소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도 국내외에서 인기였다. 일각에선 ‘좀비 한류’, ‘K-좀비’라고도 한다. 좀비물의 인기를 감염병 확산과 연계해 설명하기도 한다.

차라리 이건 어떤가. 영화 속 좀비는 맹목적이고 집단적이다. 집단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쏠림 현상이 극심한 요즘 세상이 좀비 영화 속 세상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끝났나 했는데 좀비처럼 다시 벌떡 일어나 덤벼드는 점까지.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