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법 개정안 발표가 불러일으킨 부자 증세 논란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정작 40%나 되는 세금 면제자를 그대로 두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을 지키려면 부자를 겨냥해 ‘핀셋 증세’만 할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세 면제자도 함께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연말정산 신고자(2018년 귀속분)를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사람은 721만9101명이다. 근로소득이 있어 납세 대상이 된 1857만7885명 가운데 38.9%를 차지한다. 1년 내 벌어들인 소득(총급여)에서 각종 기본공제, 의료ㆍ교육비 공제 등을 뺀 세금 부과 대상 금액이 ‘0원’ 이하인 사람들이다.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2015년 48.1%, 2016년 46.8%, 2017년 43.6%, 2018년 41.0% 등 40%대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소폭 감소하긴 했지만 40%에 육박하는 수치인 건 여전하다.
전체 근로소득자 10명 중 4명꼴로 관련 세금을 한 푼 안 내는 것이 문제라며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23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류성걸 미래통합당 의원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 “세법 개정안을 보면 세 부담을 특정 소수에 집중하는, ‘넓은 세율 낮은 세율’을 완전히 무시하는 너무나 답답한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40%에 이르는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부ㆍ여당도 쉽게 손대지 못한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면제 대상 대부분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버는 이들이라서다. 원칙의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 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2019년 연말정산을 기준으로 면제자 1인당 평균 연간 총급여는 1533만원이다. 월 급여로는 128만원 수준이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납세자) 평균 총급여(2019년 5026만원)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고시한 1인 가구 최저생계비(105만원)를 조금 넘는다. 2~4인 가구(180만~285만원) 최저생계비엔 한참 못 미친다. 1년 내내 벌어도 한 가구의 최저생계를 유지할 돈도 못 버는 근로자에게 세금까지 더 떼어가느냐는 반론이 함께 제기된다.
서민 증세는 부자 증세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역풍이 세다는 점도 정부ㆍ여당이 소득세 면제자 과다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2013~2014년 연말정산 파동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연말정산 체계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중심으로 바꾸는 ‘2013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다. 하지만 고소득자만 대상이란 정부 설명과 달리 연봉 3450만원부터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오면서 이른바 ‘월급쟁이의 반란’을 불렀다. 정부는 5500만원으로 기준선을 끌어올렸지만 들끓은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40%인 한국의 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소득의 불평등도가 높다는 것”이라며 “비과세와 세금 감면을 줄이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면, 비과세 감면으로 확보한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환급하고 해당 기본소득에 소득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면제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