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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2억개 생산" SK바이오 띄운 빌게이츠 주장, 확인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부터 연간 2억 개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빌게이츠. [EPA=연합뉴스]

빌게이츠. [EPA=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며 청와대가 26일 공개한 내용 중 일부다. 직후 SK바이오사이언스(이하 SK바이오)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빌 게이츠가 구체적인 기업명과 개발 시기, 생산량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게이츠의 말은 신빙성이 있을까. 팩트 체크를 해봤다.

국내 코로나 백신 임상 2건 모두 1·2a상 단계  

현재 국내에서는 코로나19 관련 두 건의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제넥신의 ‘GX-19’와 국제백신연구소(IVI)·이노비오가 공동개발 중인 ‘INO-4800’이다. 국제백신연구소는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1997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다. 이노비아는 미국의 바이오기업이다. 두 건의 임상은 모두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아 현재 임상 초기 단계인 1·2a상이 진행 중이다.

미국국립보건원에 등록된 코로나19 관련 백신과 치료제 임상 현황

미국국립보건원에 등록된 코로나19 관련 백신과 치료제 임상 현황

국내외 임상 중인 백신 47건, 5종은 3상 돌입  

해외의 백신 개발 속도는 국내보다 훨씬 빠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지형’에 따르면, 현재 임상시험에 들어간 백신 후보물질은 24종이다. WHO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백신 후보물질은 더 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이 운용하는 임상 정보 사이트 ‘크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에 등록된 코로나19 관련 백신 임상은 47건이다. 지난 4월 말(14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 중 5건은 임상 3상에 돌입했다. 중국 3건, 영국 1건, 미국 1건이다. 또한 19건은 2상이 진행 중이다. “한국이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는 빌 게이츠의 평가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K바이오, 게이츠 재단서 코로나 백신 개발 지원받아

“SK바이오가 내년에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연간 2억 개를 생산할 수 있다”는 발언도 과장됐다는 평가다. SK바이오는 현재 코로나19 관련 3개의 백신을 개발 중이다. 자체 개발 1건, 빌 게이츠 재단 지원 관련 1건, 국책 과제 1건이다. SK바이오는 지난 2월 코로나19 등 변종 바이러스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백신 개발 플랫폼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5월에는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360만 달러(약 44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기로 했다. 앞서 3월에는 질병관리본부가 공고한 코로나19 백신 개발 국책과제인 ‘합성항원 기반 코로나19서브유닛 백신 후보물질 개발’ 사업에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모두 전임상 단계다. 이에 대해 SK바이오 측은 “최대한 빨리 개발한다는 목표지만 임상 스케줄을 고려할 때 개발 완료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북 안동에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L하우스 백신 공장

경북 안동에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L하우스 백신 공장

연간 최대 생산 능력 1억5000만 개인데…

백신 2억 개 생산 능력도 의문이다. SK바이오는 경상북도 안동에 백신 생산 공장인 ‘L하우스(L-HOUSE)’가 있다. SK바이오에 따르면 L하우스를 완전가동했을 때 연간 생산능력은 1억5000만 도즈(dose·1회 주사분량)다. 지난해에는 약 590만 도즈를 생산했다. SK바이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해도 연 2억 개 생산은 어렵다는 얘기다. SK바이오 측은 "빌 게이츠 이사장이 어떤 근거로 2억 개라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는 왜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익명을 원한 국내 한 백신 전문가는 “빌 게이츠가 국제백신연구소(IVI)에 관심이 많은데, 김정숙 여사가 IVI 명예회장이 된 것을 축하하면서 한국에 대해 다소 과장되게 덕담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 8일 IVI 한국후원회 4대 명예회장에 추대된 바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게이츠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백신은 미국과 영국·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개발도 가장 빠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SK바이오를 언급한 것은 빌 게이츠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인연이 있기 때문에 독려하는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바이오 측은 "편지 공개 전에 빌 게이츠 쪽과 어떤 교감이나 정보 교환도 없었다"고 밝혔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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