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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국책은행 지방 이전설에 “부동산 실패 감추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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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속도를 내고 있는 공공기관 이전 추진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놓고서는 국가 차원의 금융 경쟁력 강화는 생각하지 않고 공공기관 이전을 정치 도구로만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의 모습. 연합뉴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3일 청와대와 여당에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포기한 것입니까’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해당 서한에는 당정의 국책은행 이전 추진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노조 "실패한 부동산 정책 감추기냐" 

우선 금융노조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을 “실패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분산, 희석시키려 하는 속내가 담겨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금융산업 전체에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해 정부의 금융중심지 정책에 걷잡을 수 없는 타격을 주게될 것”이라며 “아무리 문재인 정부라 하더라도 금융산업을 사지에 밀어 넣는 잘못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으며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고위 관계자는 “공개서한에 대한 답은 아직 듣지 못했다”며 “향후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국책은행이 지방으로 이전 결정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한 금융심지 정책의 포기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명백백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23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보낸 국책은행 지방이전 관련 공개서한. 금융노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23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보낸 국책은행 지방이전 관련 공개서한. 금융노조

현재 서울은 일본 도쿄와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 등과 ‘포스트 홍콩’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미 서울의 금융 경쟁력은 싱가포르 등 주요 경쟁 상대에게 뒤쳐져 있다. 영국의 컨설팅그룹인 지옌이 올해 3월 평가한 국제금융센터 지수에서 서울은 33위로, 도쿄(3위), 싱가포르(5위) 등에 뒤쳐진다. 이 와중에 국책은행이 추가로 서울을 떠날 경우 경쟁력은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초 금융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낸 ‘금융중심지 추진전략 수립 및 추가지정 타당성 검토를 위한 연구’ 보고서는 서울의 금융중심지 실패 요인으로 “국가의 모든 금융역량이 한 곳에 모이는 클러스터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꼽았다. 캐나다 토론토 등이 금융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은 반대로 “은행, 증권거래소, 생명보험, 연기금 등이 모여있는 금융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기관만 떼 지방 이전 결정, 순서 반대로 돼" 

국책은행 등 금융기관 이전 순서가 반대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물경제 활동이 금융 수요를 창출하고 금융기관들이 모이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은 반대로 금융기관을 옮긴 후 실물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금융은 본질적으로 산업이 몰려있는 중심지에 존재해야 하는데, 지방이전 효과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금융기관만 떼서 산업이 미약한 지방으로 이전부터 하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서울의 금융경쟁력도 떨어지는 가운데 정치적 논리만으로 이전을 추진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에 앞서 외부 참석자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을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에 앞서 외부 참석자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을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방이전으로 생기는 비효율도 반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주요 정책 당국은 서울에 있다.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기업은행만 보면 여신 업무의 60% 이상이 수도권 인근 공단에 위치한 중소기업 대상”이라며 “지방 이전이 될 경우 출장 증가 등 업무 비효율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수출입은행장이던 지난해 1월에는 “해외 관계자를 접하고 영업을 하려면 서울이 편하다”는 입장을 냈다.

서울 지역구 여당 의원도 "국책은행 추가 이전 필요" 

정부·여당은 반발이 거세지자 “검토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4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KBS,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은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정부 차원에서 검토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은 여당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성북갑)은 대정부 질의를 통해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비롯해 150여개 공공기관이 추가로 이전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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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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