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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AI 개인교사와 공부한 학생, 꼴찌에서 최고로 도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교육 격차 해소와 인공지능

코로나19로 비대면 학습이 늘며 교육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려면 학생 수준별 학습이 가능한 AI 가정 교사와의 학습이 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로 비대면 학습이 늘며 교육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려면 학생 수준별 학습이 가능한 AI 가정 교사와의 학습이 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는 교육 격차 확대이다. 학교가 원격 개학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수업에 크게 의존하면서 저소득 가정과 소외계층의 학생이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 사회의 형평성과 사회 이동성이 향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기본 평가에서 최저점 받은 학생들 #AI 개인 교사와 100시간 이상 공부했더니 최고 수준 향상 #학생 개개인 수준에 맞춰 AI를 활용한 맞춤학습 확산 통해 #K에듀가 교육 격차 확 줄이고 글로벌 교육 선도할 수 있어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학생이 AI(인공지능) 개인 교사와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슨 꿈같은 이야기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현실 가능한 대안이 되고 있다. 미국·중국·영국 등이 이미 우리보다 5년에서 10년 먼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필자가 유엔 교육특사인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의장으로 있는 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로서 2018년 애리조나주립대를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이 대학은 2011년부터 시작해 수학부터 경제학까지 12개 과목에 지능형 개인 교사 체제(Intelligent Tutoring System, ITS)를 도입했다. 덕분에 6만5000명의 학생이 과목별 AI 개인 교사와 학습하면서 큰 효과를 보았고,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수년간 선정됐다.

AI 개인 교사의 가능성은 무한

늦었지만 한국 대학에도 AI 개인 교사의 도입이 시작됐다. 2019년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계량분석 수업에 통계학 ITS인 ALEKS(지식 평가·학습체제)를 활용한 수업이 처음 도입됐다. KDI국제정책대학원에는 국내 학생도 있지만, 과반수는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서 온 공무원과 정책전문가들이다. 그러다 보니 통계학의 경우 개인 편차가 심해 교수가 수업 수준을 맞추기 매우 까다로운 과목이다. 그런데 AI 개인 교사는 먼저 기본 능력 평가를 통해 학생 수준을 파악한 뒤 개개인의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춰 학습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교수에게는 학생 개개인이 하루 몇 시간 동안 AI 개인 교사와 학습을 했는지 등 자세한 학습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이 수업을 디자인하고 가르친 교수의 경험담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이 수업에서 두 학생이 기본 능력 평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는데 중간고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큰 향상을 보였다. AI 개인 교사가 보낸 정보를 보니 이 학생들이 100시간 이상 AI 개인 교사와 공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전통적 수업에서는 교사가 한 명 한 명 모두를 끌어올려 주기 힘들어 낙오할 수도 있는 학생들이 AI 개인 교사의 도움을 받을 경우 성공할 수 있다.

다음 달 초 국내 11개 대학이 AI 개인 교사를 수학·화학·물리·통계·경제·영어 등의 기초과목에 도입하기 위한 컨소시엄을 발족한다. AI 개인 교사가 고등교육에서 교육 격차를 얼마나 빨리 줄일 수 있을지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AI 개인 교사라는 무한한 가능성 탐색이 우리 대학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사실 컴퓨터를 이용해 학생 학습에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 PC를 제공하거나 모든 교실에 와이파이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 그러나 AI 개인 교사라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초·중등교육에서도 열리고 있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그의 아내와 함께 설립한 찬·저커버그 이니셔티브(CZI)가 2013년부터 330개교의 5만4000명 학생을 지원하는 서밋 공립학교 프로그램도 주목받고 있다. 필자는 미국 시애틀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저소득층 학생이 밀집한 공립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학교의 오전 수업은 AI 개인 교사인 서밋 학습플랫폼을 활용해 모든 학생이 각각 다른 내용을 개인 학습 속도와 능력에 맞추어 개별 학습을 한다. 오후에는 교사들이 프로젝트 학습을 이끌거나 멘토링을 했다. AI 개인 교사가 교사 부담을 덜어주고, 교사가 학생과의 인간적 연결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의 미국 학교가 이미 AI 개인 교사 도입

미국 텍사스주 패서디나 본디중학교에서 서밋 학습플랫폼을 활용해 맞춤학습을 하는 학생들. [사진 찬·저커버그이니셔티브]

미국 텍사스주 패서디나 본디중학교에서 서밋 학습플랫폼을 활용해 맞춤학습을 하는 학생들. [사진 찬·저커버그이니셔티브]

이 학교들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서 엇갈린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학교에서는 AI 개인 교사가 교사와 협업해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학습을 도와주고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약 20%의 학교에 AI 개인 교사가 도입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교들은 아직 이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미 AI 개인 교사가 탑재된 태블릿PC 상품들이 학습지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네이버가 설립한 비영리 교육기관인 커넥트재단은 수학 과목의 대표적 글로벌 AI 개인 교사인 칸아카데미를 한국어로 번역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모든 교사에게 온라인 수업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AI 개인 교사 활용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 학교도 온라인 수업 도입을 넘어서 이를 기반으로 모든 학생이 AI 개인 교사와 맞춤학습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성공한다면 K에듀가 교육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글로벌 교육을 선도할 수 있다.

우수 교사와 IT 기술 결합한 K에듀, 글로벌 경쟁력 있어

최근 K방역에 이어 K에듀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이 교육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해외에서 더 크다. 한국은 교육의 힘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교육이 대량생산의 공장형 패러다임에서 탈피해 새로운 틀로 크게 바뀌는 기회의 창이 열리며, 2차 산업혁명부터 세계를 주도한 미국이나 영국을 추월하는 나라가 나올 수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교육 격차가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을 내놓고 세계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AI 개인 교사를 활용해 국내 교육 격차를 성공적으로 해소하는 모범을 보이고, 글로벌 교육 격차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면 대한민국은 K에듀를 통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이 AI 개인 교사에서도 여전히 선두주자이다. 최근 중국도 AI 교육 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며 기업가치가 1억 달러를 넘는 유니콘 기업들이 세계 교육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강점이 있다. 첫째,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가 있다. 우리 교사가 AI 개인 교사에게 지식 전달과 같은 일들을 맡기고 프로젝트 학습을 지도하고 학생을 멘토링 하는, 보다 인간적인 연결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빠르게 바꿀 수만 있다면 전 세계에 교육 격차를 가장 빠르게 줄이는 모범을 보일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고 최고의 디지털 기기를 생산하는 IT 강국이다. AI 개인 교사는 완전히 개발된 분야가 아니어서 지속해서 다양하고 고도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AI 개인 교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만약 우리 교육계가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협업해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AI 개인 교사를 만드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우리 교육기관에 등록하는 유학생이 지금의 두 배인 30만명이 될 수 있다. 또 우리의 학습 플랫폼과 콘텐트가 우리가 만든 디지털 기기와 네트워크와 패키지로 세계에 진출할 수 있다.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