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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공개로 드러난 탈북민 월북, 당국은 뭐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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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6일 나온 북측 주장대로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20대 탈북민의 월북이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철통같이 지켜져야 할 군사분계선(MDL)이 그토록 허술하게 뚫렸다는 게 아연할 따름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폭 2㎞의 비무장지대(DMZ)를 양쪽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우리 군은 DMZ 남쪽 경계선을 따라 2중, 3중의 철책을 세워두고 적의 기습·침투 및 월북을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를 선다. 이렇듯 절대 뚫려서는 안 될 이곳을 민간인 신분의 탈북민이 맨몸으로 통과했다면 군 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뚫린 군사분계선 경계, 책임 물어야 #북의 코로나 책임전가도 대비 필요

군사분계선이 뚫린 건 이번뿐이 아니다. 2012년 10월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허기진 북한군 병사가 아무 제지 없이 남측 초소까지 내려와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힌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었다. 이 ‘노크 귀순’ 사건 뒤에도 2015년 북한군 병사가 야밤에 넘어와 남측 초소에서 날 밝을 때까지 기다렸던 ‘대기 귀순’ 등 비슷한 사건이 꼬리를 물었고, 그때마다 군 당국은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그런데도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지 1주일이 지나서야 북한이 먼저 월북 사실을 공개한 뒤 우리 당국이 이를 확인하느라 허둥지둥하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문제의 탈북민은 남쪽 도착 후 3개월간 사회적응 교육을 받은 뒤 5년간 관할 경찰서 소속 신변보호 담당관의 정착 지원 및 관리를 받게 돼 있다. 북한 주장대로 월북자가 3년 전 탈북한 게 맞는다면 경찰의 신변 보호 대상이란 뜻이다. 특히 이 탈북민은 성범죄에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는 상태였다는 보도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수사까지 받는 신변보호 대상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확한 경위와 책임을 따져야 할 대목이다.

이번 탈북민 월북 의혹 사건을 다루는 북한의 이례적 대응과 관련해서도 당국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북측은 탈북민의 월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그가 코로나19 의심환자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대 비상체제’를 선포하고 그가 5일간 머물렀던 개성을 봉쇄했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거짓일 경우 그간 숨겨 왔던 북한 내 코로나19 창궐을 남쪽 책임으로 떠넘기기 위한 술책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그간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확진자와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는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북한에서 번진 코로나19가 탈북자가 묻혀온 바이러스에서 비롯됐다고 선전할 공산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월북한 탈북민이 진짜 환자든, 아니든 우리 정부로서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상 규명을 통한 재발 방지와 함께 북한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치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