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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옛 직장서 성희롱 침묵했더니, 후배도 당하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헌정 사상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인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은 “나도 성희롱 피해자였다”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거부한 이유는)박 전 시장의 피해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또 다른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론 어긴 정의당 최연소 의원 #“박원순 피해자 생각해 조문 거부” #비동의 강간죄 가해자 처벌 쉽게 #이달 중 1호법안으로 발의 준비

류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 빈소에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고소한 피해자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를 댔다. 이후 류 의원은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정의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류 의원과 인터뷰했다.

류호정 의원은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해 박원순 전 시장을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류호정 의원은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해 박원순 전 시장을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박 전 시장 사망 하루도 지나지 않아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미 권력을 많이 가진 이들이 추모하고 있었다. 동시에 2차 가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연대의 메시지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직장에 다닐 때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것도 사회생활인가’ 하면서 넘겼다. 그렇게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가 성희롱 피해를 겪고 ‘회사에 신고했다, 증언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너무 미안했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침묵했기에 다음 사람들이 또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행동을 한 것이다.”
조문 거부 글로 정의당 당원 탈당이 1000명 이상 이어졌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당내 갈등을 야기하게 됐기 때문에, 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고 있다.”
준비 중인 1호 법안은.
“비동의 강간죄다. 이번 달 안에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현행 강간죄를 보면 가해자에게 조금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폭행과 협박에 대해 현저하게 저항이 불가능해야 한다고 해 많은 부분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동의 여부로 하는 것을 추가할 생각이다. 최대한 법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취업 준비생들이 분노했다.
“마음이 아팠다. ‘을(乙)’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맥락이 있는 사안이다. 보안·소방 등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파견업체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보니 생명과 안전 관련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정규직화를 한 것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 맥락은 잊히고 갑자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딱 발표가 되니깐, 박탈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고, 그 박탈감을 활용해서 장사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 것을 보면서 화가 났다.”

류 의원은 이 대목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그러면서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라고도 했다. “을끼리 싸울 게 아니라 더 위에 미소 짓고 있는 자본과 기업을 향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오현석·김홍범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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