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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월급 어디로 샜냐고?…예산 짜기 실행하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74) 

경기도 소재 퍼블릭 골프장에 지인들과 함께 갔다. 그 골프장은 골프를 치고 난 후 골프백을 자신이 직접 주차장까지 들고 가서 차에 실으면 돈을 내지 않지만, 직원에게 맡기면 3000원을 내는 골프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3000원을 내고 샤워실로 향하는데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직접 골프채를 들고 가서 차 트렁크에 넣으면서 3000원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우리 일행 중에 가장 부자였고,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중 가장 부자인 한 사람이 직접 골프채를 들고 가서 차 트렁크에 넣으면서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사진 pixabay]

우리 일행 중 가장 부자인 한 사람이 직접 골프채를 들고 가서 차 트렁크에 넣으면서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사진 pixabay]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 사람이 저렇게 알뜰했나?’ ‘얼마 된다고 그런 걸 아끼나?’ ‘여기 일하는 사람도 돈 좀 벌어야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렇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면 구두쇠 짓을 하면서 돈을 모은 꼰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누가 계산을 했을까?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계산은 3000원을 아낀 그가 아주 기분 좋게 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출은 큰돈이라도 쓸 줄 알고, 적은 돈이라도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하면 아끼는 모습을 보면서 ‘부자가 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무작정 아끼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필요한 지출과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구분해서 쓰는 것, 자기 나름대로 소비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지키는 것,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원칙을 가지고 지출하는 것이 돈을 잘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늘 우리는 남의 눈 때문에,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 때문에 너무나 자주 후회하는 지출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멋지게, 잘 쓸 수 있을까?

네 가지 항목으로 돈을 구분해서 지출을 기록해 보자. 예전에 돈 관리를 잘하는 부인은 남편이 월급을 받아오면 그 돈을 몇 개의 봉투에 나누어 관리했다. 교육비, 생활비, 용돈 등으로 나누어서 그 봉투에 들어있는 돈의 범위에서 돈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미리 저축해서 돈을 불려 나갔다. 돈을 잘 쓰려면 내 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알아야 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봉투를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봉투는 돈에 대한 감각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봉투에 돈을 나누어 관리하면 내 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잘 알 수 있다. [사진 flickr]

봉투에 돈을 나누어 관리하면 내 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잘 알 수 있다. [사진 flickr]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을 네 가지 항목으로 구분해 보자. 매일 지출한 돈을 소비, 낭비, 투자, 나눔 네 가지 항목으로 구분해서 기록해 보자. 지출 항목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눌 수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면서 사는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서 지출 항목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소비는 교통비, 식비, 필요한 물건 구입 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출이다. 돈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항목은 소비로 구분할 수 있다. 낭비는 쓰지 않아도 되는 돈, 과하게 쓴 돈이다. 투자는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용한 돈이다. ‘성장 소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책값, 학원비, 다양한 학습 모임 등에서 사용한 회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눔이란 기부나 헌금 등을 비롯해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관계를 만들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한 돈이다. 하루 지출 내용이 아래와 같다고 생각해 보자.

2020년 7월 20일

아침 스타벅스 커피 4,100 (낭비)

택시비 12,500(소비)
박ㅇㅇ 대표 점심 40,000(나눔)
책 구입 18,000(투자)
김ㅇㅇ 조의금 100,000(나눔)
김ㅇㅇ 저녁식사 28,000(소비)

합계 202,600원

위의 지출 항목들을 보면 일과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다.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씩 항목을 살펴보자. 아침 스타벅스 커피를 기록하면서 낭비라고 구분한 이유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 되는데 괜히 사무실 가는 길에 들러 돈을 썼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커피가 늘 낭비는 아니다. 일 때문에 만나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고, 왠지 스타벅스에서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면 소비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그냥 습관적으로 간 것으로 평가하고 낭비라고 구분했다.

오전에 미팅 때문에 움직여야 하는데 장소가 애매하고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고 많이 걸어야 해 택시를 이용했다. 이 경우 택시를 이용했기 때문에 낭비라고 구분할 수도 있지만 지출할 돈을 지출한 것이라 소비라고 구분했다. 물론 아침에 좀 빨리 서두르면 될 것을 늦장 부리다가 늦어 택시를 타게 되었다면 낭비로 구분했을 것이다.

점심은 평소보다 과하게 썼지만 힘들어하는 후배 위로차 맛난 것을 먹었기 때문에 나눔으로 구분하고 책 구입은 당연히 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조의금은 나눔, 저녁 식사는 파트너와 함께 먹은 것이라 소비로 구분했다.

스타벅스 커피가 늘 낭비는 아니다. 일 때문에 만나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고, 왠지 스타벅스에서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마신 건 낭비로 구분한다. [사진 pexels]

스타벅스 커피가 늘 낭비는 아니다. 일 때문에 만나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고, 왠지 스타벅스에서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마신 건 낭비로 구분한다. [사진 pexels]

이런 구분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구분하면 된다. 커피를 마셔도 어떤 날은 소비일 것이고 어떤 날은 낭비일 것이고, 어떤 날은 투자가 될 수도 있고 나눔이 될 수도 있다. 그 구분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니 솔직하게 하루하루 기록을 해 보자. 매일 매일 기록하면 돈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생긴다. 낭비가 많았던 날은 마음이 아프고 지출이 적었던 날은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한 달 기록한 것을 평가하고 기준을 만들어 보자. 매일 기록하는 것을 한 달이 되면 정리를 해 보자. 한 달 지출 중에서 소비, 낭비, 투자, 나눔이 각 몇 %인지 정리해 보면 전체적인 지출 윤곽이 보인다. 낭비가 많았다면 무엇에 낭비했는지 살펴보면 내 돈이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알게 된다. 투자가 많고 적음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 보면서 미래를 위해 내가 적절하게 투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눔의 많고 적음은 내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알려 준다.

한 달 정도만 이런 작업을 해 보면 돈을 쓰는 것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고 돈을 잘 쓰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낭비라고 평가한 소비 항목 중에서 줄일 것이 있으면 줄이기로 하고, 투자나 나눔 항목에서 더 늘일 부분이 있으면 늘이고 줄여야 한다면 어떤 부분을 줄여야 할지 생각해 보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돈을 정말 잘 쓰고 싶다면 ‘예산’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위에서 나눈 소비, 낭비, 투자, 나눔을 토대로 예산을 수립한다면 ‘돈을 잘 쓰는 능력’은 많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해도 한 달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만으로도 돈의 감각은 많이 향상되고 돈을 잘 쓰는 능력은 꽤 좋아질 것이다.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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