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60)
유튜브로 하루를 연다. 그간 갈무리해두었던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만들고 올리고 알리는 일이다. 모두가 옳고 바른 소리, 이 세상 갖은 좋고 옳은 말을 내 입으로 말하다 보면 나 스스로 그러하지 못함이 부끄러워 “너나 잘하세요”라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듯해 많이 외롭기도 하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가 군자의 첫째 덕목임을 알지만, 그렇지 못한 내가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함은 ‘내가 그렇다가 아니요, 나도 그러고 싶다, 함께 우리 그 길로 갑시다, 이 세상에 진실로 행하는 자만이 말할 수 있다면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오’라는 믿음 때문이다.
만들다 보면 자연 읽고 말하고 생각하고 음악을 찾게 된다. 공부가 되고 결심도 하게 된다.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커나간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 그 이상을 실현한다 생각하면 하루 두세 개의 영상, 서너 시간의 수고가 무슨 대수겠나? 무엇보다 나 스스로 행복하고 즐거우니 다른 이유야 아무래도 좋겠다 싶다. 누가 돈 주고 하란 들 이렇게 하겠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내가 오히려 아주 고맙다.
연못물의 흐름을 보고 개울물 높이를 짐작하듯, 사람의 글로 그 마음의 깊이를 짐작한다. 이 정도면 건너기 지장 없겠구나, 이 정도면 마음 나누어도 괜찮겠구나. 손으로 찍어 맛을 봐야 된장인 줄 아는 건 아니다. 색깔도 있고 냄새도 있다.
나는 어떤 냄새, 어떤 색일까? 비 내리는 산막은 고즈넉하다. 비 오는 세상에 비 맞지 않는 안온함. 산막은 내게 늘 그런 곳이다. 톨스토이가 레빈을 통해 느끼는 무아의 몰입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풀 베기를 하고 잔디를 깎아보자. 거기에 온 마음과 몸을 던져보자. 시공도 정지되고 몰입이 있고 자신을 잊는다. 레빈이 말했던 풀을 베는 것이 아니라 낫이 스스로 풀을 베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을 기록하고 나와 너로 소통하는 것, 그리고 죽음의 존재를 늘 잊지 않는 것. 이것이 톨스토이를 관통하는 사상의 주류였다면 그와 나는 15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친구이다. 그의 글이 없다면 내가 어찌 그와 내가 친구임을 알겠는가? 글이 없다면 어찌 사람들이 내 마음의 지향과 이상을 알겠는가? 글은 이처럼 위대하다.
어제 남은 죽 한 사발로 아침을 때웠더니 12시도 되기 전에 허기가 져 부랴부랴 밥 안치고 얼린 목살 꺼내 구워 먹었다. 약죽이고 뭣이고 죽은 죽인가 보다. 오후 내내 단잠을 잤다. 연이틀 손님에 운동에 술에 곤했던가 보다. 수면 총량 불변의 주창자인지라 밤잠 걱정도 못 하겠다. 그래 잠은 잠 올 때 자면 되지. 내일 서울 일을 생각한다. 촘촘하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회사 일도 궁금하고, 맡은 일도 해야 하고, 세 개 회사 일보는 게 간단치는 않지만 즐거움으로 임한다. 언제나 즐거움으로 임하고자 노력한다.
어제 내가 아끼는 인품 좋고 인물 좋고 유능하기까지 한 CEO에게 말했다.
“미구에 닥칩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셔 오래오래 그 경륜과 지혜를 나누십시오. 욕심만 좀 버리시면 됩니다. 그 오랜 세월 쌓아온 그 수많은 상황과 경우와 내공을 사장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남겨주고 가십시오.”
그렇다. 오늘의 내가 나의 힘만으로 존재한다 믿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다. 사회와 타인과 시스템의 덕이 컸다. 받았으니 나누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저녁은 밥에 물 말고 보리굴비 남은 거 한 젓가락에 감자 세 톨이다.
에효, 개는 사료만 먹여야 한다는데, 사료 안 먹고 비쩍 마른 게 도저히 못 보겠어 황기 인삼 넣은 닭죽도 먹이고 전복죽도 먹이고 이것저것 먹였더니 기운이 펄펄 마구 휘젓고 다닌다. 풀 죽어 있는 것보단 낫다 싶은데 그나저나 앞으로 어째야 하나.
얼굴 확실히 많이 탔다. 그런데 피부도 좋아지고 머리숱도 많아졌다. 내 말이 아니라 곡우의 말이다.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얼굴은 얼의 굴이라니, 역으로 말한다면 그간의 삶이 스트레스였다는 이야기도 된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모든 업은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였음을. 아무리 세상을 떠난 마음으로 세상의 일을 하고 세상에 메인 마음으로 세상 밖의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굴레였음을…. 그러니 어쩌겠나? 구성원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줄이고 조직은 그렇게 줄여주도록 노력할밖에.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