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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조 걸린 장갑차 전쟁···한국이 만든 독거미 '레드백' 결승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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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한화 디펜스(한화) 창원 공장에서 '비장한' 출정식이 열렸다. 한화에서 만든 ‘레드백’ 장갑차 2대가 호주 멜버른 항으로 출발하는 자리다. 최대 55조원을 두고 벌이는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9월 호주 육군이 추진하는 ‘궤도형 장갑차 도입 사업’(LAND 400 Phase 3)에서 독일 라인멘탈 디펜스의 ‘링스’(Lynx) KF41 장갑차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올해 말부터 2022년까지 호주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호주군 사업에서 경쟁중인 한화 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 [사진 한화 디펜스]

호주군 사업에서 경쟁중인 한화 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 [사진 한화 디펜스]

호주군은 이번 사업으로 장갑차 400대를 도입하는데 사업비는 5조원 규모다. 하지만 사실상 5조원을 열 배 이상 넘어선 55조원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호주군 사업의 승자는 내년부터 시작하는 50조원 규모의 미군 장갑차 사업도 가져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뤄질 본격적인 승부에 앞서 전초전을 치르는 셈이다.

미국과 영국의 방산 기업은 호주군 장갑차 사업의 1차 관문에서 탈락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장갑차 교체사업에서도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한국과 독일은 최대 4000여 대의 브래들리 장갑차를 교체하는 미군 사업에서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미군의 요구 성능은 호주군 사양보다 방호력을 더 높였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호주 서식하는 독거미 ‘레드백’ 이름 붙여

주한미군 육군 신형 브래들리(M2A2) 장갑차 100여대와 군수 장비 등 1개 여단 규모 물자가 부산항 8부두에서 하역한 뒤 철로 수송작업을 위한 적재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한미군 육군 신형 브래들리(M2A2) 장갑차 100여대와 군수 장비 등 1개 여단 규모 물자가 부산항 8부두에서 하역한 뒤 철로 수송작업을 위한 적재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호주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대응해 장갑차를 비롯한 군사력 보강에 나서고 있다. 호주 침공에 대비한 전력을 꾸리는 중인데 이런 위협 인식은 일본이 침략하려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화는 호주에 서식하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독거미의 이름인 ‘레드백’을 장갑차 이름에 붙였다. 한국에서 호주 독거미를 수출하는 것이다.

레드백 장갑차는 한국군이 도입한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발전시켰다. 승무원은 3명이고 8명의 보병이 탑승한다. 레드백은 경쟁 장갑차보다 방호력과 기동성에서 모두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군 20사단 기계화부대 전투장비 기동훈련에서 K-21 장갑차가 훈련하고 있다. [뉴스1]

육군 20사단 기계화부대 전투장비 기동훈련에서 K-21 장갑차가 훈련하고 있다. [뉴스1]

360도 주변을 모두 살피는 카메라를 장착해 승무원과 탑승 보병이 장갑차 외부 전장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방호력은 호주군 요구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차체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충분히 막아내는 장갑을 달았고, 이스라엘 IMI에서 개발한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방호시스템도 적용해 로켓 공격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킨다. 장갑차를 향한 로켓 공격을 탐지한 뒤 대응 로켓을 쏴 요격하는 방식이다.

보병전투장갑차‘레드백’.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보병전투장갑차‘레드백’.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뢰와 급조 폭발물(IED)이 폭발해도 탑승 장병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 보통 지뢰방호차량(MRAP)은 차체 바닥을 ‘V’자형으로 만들어 폭발 압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만든다. 하지만 궤도형은 차륜형 장갑차와 달리 차체 높이가 낮아 이런 구조적인 특성을 활용할 수 없다.

한화는 최적화된 장갑 구조로 충격을 흡수하고 방호력 조건에 충족하는 탑승 좌석을 장착해 이를 보완했다. 탑승 공간에 설치된 소화장치 덕분에 내부 화재가 발생해도 빠르게 불을 끌 수 있다.

방호력과 기동성 모두 경쟁사 대비 우위

레드백과 최종 경쟁을 벌이는 독일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Lynx) KF41 장갑차 [라인메탈 디펜스 제공]

레드백과 최종 경쟁을 벌이는 독일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Lynx) KF41 장갑차 [라인메탈 디펜스 제공]

보통 기갑 장비는 철로 만든 캐터필러(무한궤도)를 장착하지만 레드백은 고무 재질의 캐터필러를 달았다. 고무 탄성 덕분에 소음과 무게는 낮추고 승차감을 높였다.

도로주행 시험차량에 탑승해 보니 내부 소음은 60~70㏈ 정도로 전화벨 소리 수준에 머물렀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옆 사람과 대화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보통의 궤도 차량과 달리 진동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퀴로 달리는 차륜형 장갑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관계자는 “고무 궤도와 유기압 현수장치(ISU) 덕분에 차체 중량도 줄였고 승차감도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고무 궤도는 철로 만든 궤도 무게 5톤과 비교하면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궤도 무게가 줄어들어 차체 속도는 더 빨라졌다. 줄어든 무게 덕분에 장갑도 더 달수 있어 방호능력도 올라갔다. 무게가 줄면서 기동성과 방호력이 동시에 올라가는 효과를 만들었다.

고무 궤도 역시 일반 철 소재 궤도와 같이 전투 중 발생한 피해로 끊어지더라도 필요한 부분을 수리해 이어 붙일 수 있다. 또한 고무 재질 덕분에 지뢰 폭발 등 충격을 받더라도 장갑차 주변 아군에 미치는 위험도 줄어든다. 이라크에서 미군 장갑차가 폭발할 때 튀어나간 궤도 파편에 인명 피해가 심했다.

지난 6월 파주 훈련장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자주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한화 디펜스는 지난 20년 동안 K9 자주포 1300여 문을 한국군에 인도했고 6개국에 수출했다. [뉴스1]

지난 6월 파주 훈련장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자주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한화 디펜스는 지난 20년 동안 K9 자주포 1300여 문을 한국군에 인도했고 6개국에 수출했다. [뉴스1]

무게 40t이 넘는 장갑차가 최고 시속 65㎞로 달릴 수 있는 이유는 K9 자주포 덕분이다. 47t 무게의 자주포를 최고 시속 65㎞로 끌어내는 1000마력 동력장치를 옮겨 왔다. K9 자주포 파워팩(엔진+변속기) 성능은 이미 현장에서 입증됐다. K9 자주포 전력화 사업은 1999년부터 시작돼 20년 동안 신뢰성을 확보했다.

반면 경쟁자인 독일 장갑차에 장착한 동력장치는 최근에 개발돼 아직 신뢰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단점을 갖는다.

레드백의 공격력은 이스라엘과 호주가 맡았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T2000’ 포탑은 호주도 합작해 만들었다. 30㎜ 구경으로 분당 최대 100~200발의 기관포를 쏟아붓는다. 여기에 대전차미사일도 달아 전차 공격도 가능하다.

한화 관계자는 “호주가 요구하는 성능에 충족하도록 만들었다”며 “시험평가를 받는 동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품질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호주 현지에서 이뤄질 시험 평가가 수주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기 때문이다.

호주 현지에 국가대표 20명 파견 

한화 디펜스 이성수 대표이사와 레드백(Redback) 장갑차 시험평가 지원팀이 지난 24일 창원2사업장에서 열린 호주 출정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한화 디펜스 이성수 대표이사와 레드백(Redback) 장갑차 시험평가 지원팀이 지난 24일 창원2사업장에서 열린 호주 출정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한화는 호주와 본 계약 체결에 앞서 450억 규모의 성능 확인을 위한 ‘RMA’ 계약을 맺고 시제품 3대를 전달하기로 했다. 호주는 현지에서 각종 성능 시험평가와 호주군 운용자 평가를 통해 최종 우선협상자를 선발한다.

시험평가는 오는 11월부터 내년 8월까지 이뤄지고 우선협상자 선정은 2022년 말에 결정된다.

시제품 2대는 이날 평택항에 도착한 뒤 선적 과정을 거쳐 28일 출항할 예정이다. 8월 말 멜버른 항에 도착한 뒤 현지에서 호주와 이스라엘이 공동 개발한 포탑을 조립한다. 호주군 운용 교육을 마친 뒤 11월부터 본격적인 시험 평가를 시작한다.

한화는 8월 말 항공편으로 직원 20명을 현장에 파견한다. 이들은 현지에 체류하며 시제품 성능 시험과 호주군 교육 등을 맡는다. 독일과의 경쟁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와 다름없다.

10월엔 시제품 1대가 추가로 출발해 각종 공격에 얼마나 버텨 내는지 측정하는 방호력 시험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최현호 군사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레드백과 독일의 링스는 성능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며 “결국 호주 현지 조건에 최적화된 능력을 보여주는 장비가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창원=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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