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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머니] 450억 냈는데···334명이 사기고소, 구로 주택조합서 생긴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서울 구로동에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이들이 사기를 당했다며 서울남부지검에 단체로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이후 추가 고소한 인원까지 합하면 고소인은 총 334명. 물거품이 된 꿈과 함께 녹아버린 계약금을 찾기 위한 긴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월드메르디앙 아트구로 홍보영상. (가칭)구로동지역주택조합 홈페이지 캡쳐.

월드메르디앙 아트구로 홍보영상. (가칭)구로동지역주택조합 홈페이지 캡쳐.

#‘월드메르디앙 입주자 모십니다’

=‘구로동지역주택조합(가칭)’은 2016년 11월부터 조합원을 모집했다. 구로역 500m 인근에 1230가구가 살 수 있는 25층짜리 아파트 ‘구로 월드메르디앙 아트구로’를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가산동에 모델하우스를 세우고, 온라인에서도 블로그·카페·사이트 등을 통해 광고했다. 홍보영상엔 ‘트리플 역세권, 평당 1300만원의 합리적 분양가. 구로의 품격을 높이다.’ 등의 문구가 있다.

=지난해 초까지 847명이 모였다. 대대적 홍보 덕인지 구로구 외 서울 지역이나 인천·경기도에서 온 이들도 많았다. 연령은 주로 50~60대가 많았지만 20대와 70대도 여럿 있었고, 부자(父子)나 부부가 나란히 두 채씩 계약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합원들이 수상한 낌새를 느낀 건 올해 초 임시총회에서다. 지금까지 조합에 총 450억원 정도를 줬는데, 사업용지 매입에 쓴 돈이 77억원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역주택조합이 뭐길래

=‘지역주택조합’은 주택법에 규정돼 있는 주택취득의 한 방식이다. 재개발·재건축이 ‘내 땅에 새 아파트’를 짓는 거라면 지역주택조합은 ‘남의 땅에 새 아파트’를 짓는 거다. 당연히 재개발·재건축보다 어렵다. 부지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 설립인가가 나더라도 실제 입주까지 이르는 경우는 20% 남짓이다(2005~2015년 사업 건수 기준). 하지만 땅도, 집도 없고 청약 가점도 충분하지 않은 데다 일반 매매는 더욱 엄두를 못 내는 이들에겐 몇 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다.

=위험하고 어려워 보이는데 847명이나 몰린 이유는 뭘까. 고소장을 낸 조합원들은 “가입 당시 홍보담당 직원으로부터 사업부지의 70~80%가 확보된 상황이라고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려면 80% 이상의 부지에 대해 사용 승낙(사용권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조건에 거의 다다랐다고 하니 “인가와 시행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입주 예정 시기는 2020년~2021년”이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렸다는 거다.

 조합인가를 받기 위한 모집단계에서의 명칭이기에 '가칭'이 붙는다. 홈페이지 캡쳐

조합인가를 받기 위한 모집단계에서의 명칭이기에 '가칭'이 붙는다. 홈페이지 캡쳐

#‘80%’ 라더니…3년 뒤 열어보니 ‘30%’

=조합원들은 소송을 시작하고 나서야 실제로 사용 승낙을 받은 토지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조합원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장우진 변호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승낙을 받은 토지는 30.47%. 모집 당시인 2017년 말(18%)이나 2018년 말(28%)에 비하면 늘어난 거지만, “70~80%를 확보했다”는 말에 계약한 조합원들은 분통이 터진다.

=조합 사무실 관계자는 “당시 말한 70~80%는 개발 동의 등을 포함한 수치를 말한 것”이라면서 “지역주택조합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하는 사업인데, 2차 계약금부터 안 낸 조합원들이 많아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거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 매입에 드는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매입 진행'중인 토지까지 합해 73.26%의 승낙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표는 조합이 제작한 토지 현황.

조합 측은 '매입 진행'중인 토지까지 합해 73.26%의 승낙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표는 조합이 제작한 토지 현황.

#사기 들끓자 법 바꿨지만

=24일 시행되는 주택법 개정안은 ‘주택조합 조합원의 재산권 보호 및 사업 추진의 투명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부지의 50% 이상의 사용권원을 확보해야 조합원 모집에 나설 수 있고 ▷업무 대행은 5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춘 법인에 맡겨야 하며 ▷조합원 모집신고 후 2년 내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하면 사업을 종결할 수도 있다. 구로동 지역주택조합은 모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이다. 10%대 부지만을 확보한 상태에서 조합원을 모집했다. 대행사(한결디엔씨) 자본금은 3억원이었다. 모집을 시작한 지 3년 8개월이 지났지만, 사업을 끝내지도 계속하지도 못하고 있다.

=서울 중화동 지역주택조합에서는 승낙률을 부풀린 업무대행사 대표가 구속돼 서울북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2010~2015년 당시 승낙률이 37% 정도였는데 80%가 된다고 속여 103명에게서 66억원을 받은 혐의 등(사기·횡령·배임)이다. 검찰은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징역 17년을 구형했다. 김성덕 중화동 대책위원장은 “서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역주택조합은 합법적인 사기 분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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