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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안 짓고 ‘혼밥’…전략 바꿔 살아남은 에티오피아 늑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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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엔 해발 2000m가 넘는 산과 고원이 즐비하다. 멀리서 보면 아스라히 중첩된 산의 이미지가 멋진 풍경을 선사하지만 사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가도가도 첩첩산중인 곳에 높은 고도까지 더해져 덩치 큰 동물에겐 접근불가의 땅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 늑대들이 산다. 아프리카 유일의 늑대 서식지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아남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먹이감 부족한 고원지대에 적응 #낮엔 혼자 사냥하고 밤에만 모여 #홀로 사는 매, 미 사막선 집단 사냥 #코로나·디지털 시대 환경 변화 #가장 바꾸기 힘든 몸에 익은 방식 #가장 먼저, 완전히 바꿔야 생존

물론 원래 살던 곳은 아니었다. 산 아래의 풍족한 서식지에 살았지만 점점 영역을 넓히는 인간에 밀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덕분에 인간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문제는 먹을 것도 없다는 것. 아니 하나 있기는 있다. 어른 주먹 한두 개 정도 되는 크기의 설치류들이다. 하지만 땅 속에 굴을 파고 사는 데다, 워낙 조심성이 강해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굴 근처에서 멀리 가지도 않을 뿐더러,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바람처럼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굶어 죽기에 딱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비결은 하나, 이곳 환경에 맞춰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존방식을 바꾼 덕분이다. 예를 들어 다른 곳에 사는 늑대들은 하나 같이 무리생활을 한다. 크든 작든 무리를 지어 산다. 우리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듯 녀석들도 그렇다. 태생적인 생존전략이라는 뜻이다. 『정글북』을 쓴 러디어드 키플링이 얘기했듯 “늑대의 힘은 무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곳 녀석들은 밤에만 같이 지낼 뿐, 날이 새면 다들 흩어진다. 여기서 무리로 활동했다간 굶어 죽기 딱 좋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뿐인 먹이인 작은 설치류들은 그야말로 한입 거리라 간식 정도 밖에 안 된다. 여러 마리를 먹어야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으니 무리로 활동할수록 투자 대비 비용이 많이 든다. 손해다. 그래서 추운 밤에만 다같이 모여 지내고 아침이 되면 제각기 흩어진다.

흩어진 늑대들은 설치류가 사는 구멍 하나를 찾아 잠복에 들어간다. 타는 듯한 햇빛이 내려쬐지만 햇빛이 대수인가. 사냥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기에 마치 테러범이 은신처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대테러 요원처럼 구멍을 응시하며 끈질기게 기다린다. 설치류들이 풀을 뜯어먹으러 잠시 나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인다고 바로 공격하는 건 실패로 가는 지름길. 경계심이 가득한 데다, 굴이 바로 옆에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기회가 눈앞에 있을수록 신중해야 한다.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설치류가 좀 더 굴에서 멀리 떠나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동시에 낮은 포복으로 조금씩 접근한다. 한 발 딛고 엎드리고, 다시 한 발 디디려다 설치류가 뭔가 눈치챈 듯하면 얼른 다시 엎드린다. 접근하는 데만 몇십 분씩 걸린다. 그렇게 기회를 만든 다음, 결정적인 순간 덮친다.

#노력한다고 성공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때가 더 많다. 열에 한두 번 정도만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혼밥’을 한 다음, 밤이 되면 모인다. 덕분에 지금도 잘 살아있다.

자신들이 해왔던 몸에 익은 방식으로 최선을 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최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환경에 맞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방식은 예전의 환경에 맞는 방식이었다. 생존전략이라는 것 자체가 환경의 산물이니 환경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전략(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한 것이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그 환경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면 살아남는 게 자연의 순리고 생존의 이치다. 예를 들어 하늘을 주름잡는 매는 기본 생존전략이 늑대들과 반대다. 무리생활을 하지 않고 따로따로 산다. 하지만 미국 소노란 사막에 사는 해리스매는 유일하게 무리를 짓는다.

사막이라 먹이가 귀한데, 도마뱀 같은 맛있는 먹이가 선인장 가시 덤불 사이로 숨어 버리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 들어갈 수 없기에 혼자서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실제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무리가 있으면 다르다. 선인장 주변을 포위해 사냥에 성공한다. 이들 역시 해오던 대로가 아니라,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개발했기에 지금도 사막에서 살아간다.

단순히 버티면 지나가는 위기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서 생겨나는 위기에서는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최근 어쩔 수 없이 시행했던 재택근무를 일반적인 근무 형태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조사를 통해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한국의 재택근무 비중이 가장 낮다고 보도했다. 세상은 디지털화 되어 가고 있는데 많은 기업이 여전히 얼굴 보고 근무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요즘 세계적인 기업들의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몸이 출근하는 게 아니라 머리가 출근하는 방식이다. 가장 바꾸기 힘든 걸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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