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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10년 지나면 수도권으로 몰릴텐데, 의대정원 늘리기 산넘어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과 보건복지부가 23일 의과대학 정원을 16년 만에 연간 400명, 10년에 4000명을 늘리기로 확정했다.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 근무할 지역의사 3000명, 아주대 이국종 교수 같은 중증외상 의사와 역학조사관 등 특수·전문 분야 의사 500명, 기초의학이나 백신·치료제 개발을 담당하는 의사 과학자 500명을 예산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또 공공분야 의료를 전담할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기로 했다.

당정 의사 정원 증원 카드 냈지만 곳곳 장애물 #의사협회 파업 예고, 지역의사 대도시 회귀 가능성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을 16년 간 유지해왔다. 당정은 2022학년도(현재 고교 2년생 입시)부터 지역의사가 될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의사가 부족한 것은 맞지만 코로나19 전쟁 중인데다 의료계와 제대로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게 적절한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별 의사 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역별 의사 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의사 늘리기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는 불균형 해소다. 군이나 소도시에 의사가 너무 적다. 성형외과·피부과 등은 의사가 몰리지만 감염내과·외상외과·산부인과 등은 점점 줄어 진료 과목 불균형이 심하다. 군 지역에서 대도시 원정 진료가 예사다. 진료 수가를 높이고, 예산을 지원했지만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직접 양성’ 카드를 꺼냈다. 코로나19에서 역학조사관이나 감염내과 의사 부족이 알려진 게 계기가 됐다.

지역 의사는 전액 장학금으로 양성한다. 대신 10년 동안 해당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이나 필요한 분야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어기면 학비를 토하고 의사 면허를 취소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사인력 불균형 해소하기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다. 4000명보다 조금 더 늘려야 한다”며 “의사를 늘린다고 의사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학병원과 연계 방안을 같이 내놔야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OECD 주요국 임상의사 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OECD 주요국 임상의사 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5명)에 못미친다. 경북은 1.4명에 불과하다. 울산·세종·충남·충북도 적다.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집중하고 기초의학이나 과학을 꺼린다. 졸업생의 1%도 기초의학에 안 간다. 임상 의사도 낮은 수가 탓에 환자 보느라 정신이 없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선진국에 비하면 의사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이번 정책이 늦었다”며 “인력이 충분해서 지방으로 흘러가면 좋지만 우선 부족하다 보니 지역의사를 양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관 투성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내달 14, 18일 중 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혼란을 틈타 면밀한 검토 없이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워 당정 협의를 진행했다”고 말한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고대 의대 교수)은 “의사들이 코로나19와 전쟁 중인데 왜 이렇게 서두는지 모르겠다”며 “의대정원 관련 토론회를 24일 시작하는데, 의사 의견을 듣지도 않고 진행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한 이사장은 “인구가 줄기 시작했기 때문에 의료의 장기발전계획을 짜서 정원 논의를 해야 한다. 의학전문대학원 신설 등에 의료계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가 실패했다”며 “이번 발표를 전면 재검토하고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난관도 적지 않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지역의사가 자칫 ‘2류 의사’ 신세가 될 수 있다”며 “의무 근무기간이 지나면 대도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조건을 어기면 의사 면허를 취소한다는데 위헌 소지가 있다. 일본은 소송에서 ‘취소 불가능’ 판결이 났다. 의사가 늘면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창출해 국민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세종=김민욱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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