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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일본군이 불 질러 잿더미로 만든 미얀마 왕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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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24) 

33미터 높이의 나무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달레이 왕궁 모습.

33미터 높이의 나무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달레이 왕궁 모습.

엄청난 크기의 만달레이 왕궁

9시 20분 호텔을 출발해 왕궁 주변으로 갔다. 왕궁은 민돈 왕에 의해 1857년에 지어졌다. 왕궁이 완성되자 민돈 왕은 아마라뿌라에서 수도를 만달레이로 옮겼다. 왕궁 주변 사방은 물로 채워진 해자가 조성되어 있다. 1시간 정도 걸어 왕궁 입구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고 내부로 들어갔다. 왕궁에는 동·서·남·북 4방향으로 출입구가 있지만, 관광객은 동쪽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해자에는 청소 보트가 다니면서 낙엽 등 부유물을 수거하는 것이 특이하다. 왕국에 들어가는데 지역관광 입장료를 1인당 1만짯을 내라고 한다.

만달레이 왕궁 모습. [사진 조남대]

만달레이 왕궁 모습. [사진 조남대]

왕궁 규모는 엄청나다. 한 변의 길이가 2km인 정사각형의 왕궁이다. 왕궁 바깥에는 폭 70m, 깊이 3m의 해자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왕궁을 둘러싼 성벽의 높이는 8m, 성벽의 두께는 3m라고 한다. 또 왕궁 벽에는 외부에서 적이 침입할 경우 총을 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입구에서 왕궁까지 가는데도 10여 분 정도 걸어야 할 정도로 멀다. 내부에는 군인의 모습이 보이고 군악대가 연주하며 행진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만달레이 왕궁에 있는 33미터 높이의 나무 전망대.

만달레이 왕궁에 있는 33미터 높이의 나무 전망대.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든 일본군

1885년 영국은 제3차 미얀마·영국 전쟁을 일으켜 왕궁을 점령하고 띠보왕을 추방한 후 왕궁을 주지사 관저와 영국인 클럽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일본군에게 함락돼 군사보급창으로 사용하다가 1945년 3월 20일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단다.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왕궁은 미얀마 정부가 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1990년 복구 작업을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과거 왕실 건물은 총 114개였으나 현재는 64개만 복구되었다. 그러나 건물의 외벽만 나무로 만들어 놓았을 뿐 내부는 넓은 홀 형태로만 되어 있어 모조품처럼 썰렁하고 마룻바닥이 뒤틀리는 등 엉성하다. 지붕도 함석판을 올리고 그 위에 붉은색으로 칠했다. 왕궁 한쪽에는 나무계단을 달팽이처럼 빙빙 돌면서 121계단을 올라가면 33m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나무로 만들어 놓아 좀 불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망대에 올라가면 왕궁과 주변이 다 보인다. 복원해 놓은 규모가 대단하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만달레이 힐’

'만달레이 힐'에서 바라 본 시가지와 골프장 풍경.

'만달레이 힐'에서 바라 본 시가지와 골프장 풍경.

11시 30경 관람을 마치고 왕궁 안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와 흥정하여 2시까지 1만5000짯을 주고 주변 시내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한 다음 '만달레이 힐'로 올라갔다.
그 안에 있는 사원 한편에는 코브라 형상을 만들어 놓고 입에다 돈을 끼우고는 코브라 머리를 쓰다듬는다. 코브라 상에도 만달레이 언덕의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우 칸티’라는 승려가 이곳에 탑을 세우기로 하고 명상을 하던 중 근처 산에서 네 자매가 나타나 재물과 코브라를 보내 만달레이 언덕의 건립을 도왔다고 한다.

대리석 경판이 집결된 ‘쿠토떠 파야’

'쿠토떠 파야'에는 729개의 힌 스투파 안에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보관되어 있다.

'쿠토떠 파야'에는 729개의 힌 스투파 안에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보관되어 있다.

‘만달레이 힐’을 내려오자 기사는 ‘쿠토떠 파야’에 택시를 세워준다. 이곳은 민돈 왕에 의해 1859년 세워진 것으로 세계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다. 불교에서 중시하는 ‘경전 집결’이 개최된 곳이다. 경전 집결은 부처 사후에 각기 해석되던 경전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모임이다. 민돈 왕은 제5차 경전 집결에서 채택된 내용을 729개의 흰 대리석판에 새겨 사각으로 된 흰색의 탑 안에 보관해 두었다.

돌에 새겨진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알려져 있다. 석판에 불경을 새기는 작업은 1860년 시작되어 1868년에 완성되었는데, 2400여 명의 승려가 쉼 없이 이어 읽기를 6개월이나 했다고 한다. 대리석에 새겨진 경판은 작고 흰 스투파 안에 하나씩 세워져 보관되어 있는데, 1만6000여 평의 대지에 줄지어 있는 흰 스투파의 풍경은 아주 인상적이다.

티크 나무로 지은 ‘쉐난도 짜웅’

티크 나무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만든 '쉐난도 짜웅' 전경.

티크 나무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만든 '쉐난도 짜웅' 전경.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으로 만들어진 '쉐난도 짜웅' 벽면.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으로 만들어진 '쉐난도 짜웅' 벽면.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쉐난도 짜웅’이라는 건축물은 티크 나무로 아름답게 지었는데 민돈 왕과 왕비가 거주했던 건축물로 원래 만달레이 왕궁 안에 있었다. 민돈 왕 사후에 그의 아들인 띠보 왕은 선왕의 뜻에 따라 건축물을 해체해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 지금은 수도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때 건물 전체가 도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내부에는 군데군데 벗겨진 도금 흔적과 벽과 지붕에 장식된 조각문양을 통해 당시 만달레이 왕궁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옛 만달레이 왕궁이 일본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쉐난도 짜웅은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리지널 왕실 건축물인 셈이다. 티크 나무로 지어져 검게 보이나 나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은 찬사를 받을 만큼 훌륭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택시 관광을 마치고 근방의 다른 곳으로 옮겨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종업원이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보고는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국말로 하세요”라고 한다. 어떻게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느냐고 물어보니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면서 현빈 등 배우 이름도 줄줄 이야기한다.

미얀마에서 동행했던 선희씨와 작별

식사하고 숙소로 이동하여 좀 쉬다가 짐을 챙겨 3시 반 경에 숙소 앞으로 나오니 선희 씨가 어제 예약한 택시를 타고 도착해 있었다.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자 40분 정도 걸렸다. 택시비 1만4000짯 나누어 냈다. 선희 씨는 비행기 출발시각이 빨라 먼저 들어가고 우리는 안내원이 좀 기다리라고 하여 30분 정도 기다리다 검색대로 들어갔다. 선희 씨와는 바간과 만달레이에서 3박 4일 동안 동행하며 여행했다.

젊은 여교사와 함께 지내면서 바간에서는 같은 호텔에서, 만달레이에서는 이웃 호텔에서 지냈다. 여행은 각각 하면서도 저녁에 만나 식사와 맥주를 같이하고, 택시도 같이 타고 다니는 등 재미있게 지내면서 경비도 절약할 수 있었다. 상냥하고 똑똑한 아가씨하고 동행하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만달레이 공항은 시골 공항이라 조용하고 한가하다. 여기서 우리는 태국 방콕으로, 선희 씨는 태국 북부지역인 치앙마이로 갔다.

미얀마에서 5박 6일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처음 태국 매사이를 통해 국경을 넘어 미얀마에 들어와 인레호수에서 멋진 풍경을 보았으며, 바간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파고다 관람을 하였고. 만달레이에서는 우베인다리에서 멋진 일몰과 만달레이 왕궁을 둘러보았다. 어여쁘고 상냥한 젊은 여교사와 함께함으로써 우리의 여행이 더 유익했고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방콕 카오산 로드의 야경.

방콕 카오산 로드의 야경.

예정시각보다 15분 빠른 7시에 비행기는 이륙해 1시간 50분 정도 걸려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방콕의 밤은 질서정연하면서도 휘황찬란하다. 우리를 빨리 오라고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미얀마의 한적한 시골을 주로 다니다 거대도시에 오니 반갑기도 하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이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인천공항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은 것 같고 시설 면에서도 뒤떨어진 분위기다.

일행과 반가운 재회

관광안내 책자에서 방콕 시내는 차가 많이 밀린다는 이야기를 보기도 했는데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별 막 힘없이 시내로 들어왔다. 숙소에 도착해 조금 있으니 일행이 들어와서 반갑게 재회를 하였다. 그동안 서로 여행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우리 숙소 근방에 유명한 카오산 로드가 있다며 가보자고 했다. 10여 분 거리에 있는데 그 시각에도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다. 맥주 등 술을 파는 가게와 마사지 가게 등이 대부분인데 길거리까지 의자를 내놓고 음악을 크게 튼 채 여행객의 흥을 돋우며 유혹한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저녁 식사를 겸해서 안주로 새우튀김과 닭 요리 등 3가지와 맥주를 마시며 헤어져 있으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휘황찬란한 방콕의 거리에 취해 본다. 환락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를 오가는 여행객들과 술 마시는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새벽 1시간 다 되어가도록 맥주를 마시다가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피곤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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