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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코로나로 지지율 79% 반전···EU가 흉보던 '메르켈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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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잘 넘기고, 분열된 유럽도 묶어 #NYT "코로나 시대 최종 승자는 독일이 될 것" #동네에서 직접 장 보는 '주부 총리'로도 유명

15년간 총리를 지내고 내년 은퇴가 예정된 어쩌면 자국민에도 식상한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66) 독일 총리가 다시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를 어느 나라보다 잘 넘긴 데다, 찢어진 유럽연합(EU)을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입니다. 자국의 이익, 자신의 정치적 이득만 생각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진영의 리더'들이 판치는 상황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 겁니다.

메르켈 총리의 젊은 시절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변화 모습 [중앙포토]

메르켈 총리의 젊은 시절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변화 모습 [중앙포토]

최근 EU 경제회복기금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는데요, 여기서 메르켈 총리는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EU 27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불러온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7500억 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초 이틀 일정이었던 회의가 90시간이 넘도록 이어질 정도로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회원국별로 처한 상황이나 이해관계가 달라 벌어진 일입니다. 특히 같은 유럽으로 묶여있지만 부유한 북유럽과 상대적으로 처지가 어려운 남유럽은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가 일대일 설득에 나서며 협상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최근 분열된 유럽을 하나로 묶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가 끝나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 [AP=연합뉴스]

최근 분열된 유럽을 하나로 묶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가 끝나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 [AP=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협상안에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의 동의를 얻어낸 것도 메르켈 총리였습니다. "남유럽이 망하면 유럽 전체가 망한다"면서 끈덕지게 설득을 했습니다. 과거 남유럽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며 보조금 지급에 반대해왔던 메르켈 자신의 유연한 변화가 다른 나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이 됐다는 분석입니다.

마침 회담이 시작됐던 17일은 메르켈 총리의 66번째 생일이었는데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건넨 와인, 보이코 보리소프 불가리아 총리의 장미 오일 선물 못지않게 회담 타결은 그에게 큰 선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20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앞줄 맨 왼쪽),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프랑스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 착용)과 함께 자료를 검토중인 메르켈 총리(맨 오른쪽)[AFP=연합뉴스]

지난 20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앞줄 맨 왼쪽),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프랑스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 착용)과 함께 자료를 검토중인 메르켈 총리(맨 오른쪽)[AFP=연합뉴스]

NYT "코로나 최종승자는 독일"...고용 안정이 힘 

40%대에 머물던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최근 79%까지 껑충 뛰었습니다. 밖에서는 유럽을 하나로 모으고, 안에서는 코로나 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덕입니다.

미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부러웠을까요. 뉴욕타임스는 "메르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거울 이미지"이라며 "메르켈의 인기는 독일 내 극우파와 극좌파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난민 수용 정책을 펼친 메르켈 총리를 공격하던 극우파도, 그런 극우파를 공격하던 극좌파도 요즘은 잠잠합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리더십이 어떻게 국민 통합을 끌어내는지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입니다.

독일 베를린 난민보호소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은 시리아 난민 모다나미. [트위터 캡처]

독일 베를린 난민보호소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은 시리아 난민 모다나미. [트위터 캡처]

한 발 더 나가 "코로나 이후의 경제의 최종 승자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독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모건스탠리의 신흥시장부문 총괄사장 루치르 샤르마의 칼럼을 통해섭니다.

효율적인 정부, 건전한 재정, 두터운 고용 안전장치 등 독일 경제의 장점이 위기 국면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입니다.

유럽 어느 나라보다 견실한 재정 덕에 코로나19 국면에서 독일은 어느 나라보다 공격적인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가계 지원과 기업대출 등에 국내총생산(GDP)의 55% 규모를 뿌렸습니다. GDP 대비 부양책 수준은 미국의 4배를 넘습니다. NYT는 "코로나로 인한 특수 지출의 상당 부분이 독일 정부의 저축에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독일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2%까지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코로나발 실업대란이 영구화될 것이란 우려에서도 독일은 한발 비켜나 있습니다. '쿠어츠 아르바이트(Kurzarberit·조업단축)' 라는 고용안정 장치 덕입니다.

이 정부 프로그램에 따르는 기업들은 일감이 줄어 일시적으로 업무가 중단되거나 근로 시간을 줄더라도 근로자들의 공식 고용 상태를 유지합니다. 정부는 월급의 3분의 2를 대며 기업들을 지원합니다. 지난 4월 초 기준 50만개의 독일 기업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대량 실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EU 회원국들에 독일은 지독한 '자린고비'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르켈도 케케묵은 빵조각까지 모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는 의미로 '슈바벤(독일 지역명으로 이 동네 사람들은 고지식한 구두쇠로 인식됨) 주부'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 나라 곳간이 부족해진 지금, 그 말은 비웃음이 아닌 부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총리가 된 뒤에도 자신이 직접 장을 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퍼스바자]

메르켈 총리는 총리가 된 뒤에도 자신이 직접 장을 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퍼스바자]

직접 장 보는 알뜰 주부...러시아어대회 우승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2005년 총리 취임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2005년 총리 취임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해 현재 4기째를 맞고 있습니다. 15년째 총리를 지내다 보니 2005년 이후 출생한 독일 아이들 사이에는 '총리는 여성'이라는 인식까지 생겼다고 하네요.

태어날 때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였습니다. 구서독인 함부르크 출생이지만 생후 석 달 때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가 동독 지역에 발령이 나면서 동독으로 이주했습니다.

1977년 같은 대학을 다니던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가 1981년 이혼했습니다. 그때 성(姓)인 메르켈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1998년 과학 아카데미에 취직했을 때의 동료였던 양자화학자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습니다. 독일 축구와 오페라의 열렬한 팬인 그는 남편과 함께 종종 오페라 공연을 보러 외출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습니다.

남편 요하임 자우어(왼쪽)와 메르켈 총리가 2017년 '리하르트 바그너 페스티벌'에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남편 요하임 자우어(왼쪽)와 메르켈 총리가 2017년 '리하르트 바그너 페스티벌'에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총리가 되고 나서도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는 알뜰 주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직접 스프나 룰라드(와인소스와 채소를 넣은 독일식 쇠고기 롤)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옷차림 역시 소박하다 못해 한편에선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과거 샤넬의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 메르켈 총리의 패션을 두고 "너무 긴 바지와 너무 타이트한 재킷"이라며 신랄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언어 능력자'이기도 합니다. 소련군이 주둔했던 구동독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러시아어를 배워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답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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