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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불붙는 ‘언택트’ 조세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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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요즘 떠오르는 퀴즈 하나. ‘대한민국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누구인가?’ 남성과 여성? 맞지만 요즘 퀴즈에 대한 답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 틀렸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층도 많다. 부자(富者)와 빈자(貧者)? 부자도 있고 빈자도 있지만 부자와 빈자를 무 자르듯이 둘로 나누기 어렵다.

쏟아지는 각종 부동산 규제에 #실검 올리기 등 언택트 저항 #땜질식 정책으론 믿음 못 얻어

답은 무엇일까. ‘집이 있는 자와 집이 없는 자’다. 시장과 거꾸로 가는 부동산 정책 탓에 일반인 두세 명만 모이면 부동산 얘기를 한다. 여기서 집이 있는지, 집이 없는지 확인한 뒤 서로 이야기를 격렬하게 토해낸다. 문제는 부동산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 사회 새내기, 심지어는 대학생으로까지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어느 정권에서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가격 안정이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거나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을 쓴다. 보통은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조합해서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기존의 공급만으로도 늘어나는 수요를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 정부 들어 수도권 유입인구 증가, 1인 가구 확산 등으로 주택 수요가 크게 늘었다.

서소문 포럼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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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역대 정권에서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꼽혀온 서울 강남권을 겨냥했다. 세금 부담을 높여 주택 보유의 매력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정부는 2018년부터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을 매년 올렸다. 현실화가 명분이다. 주요 대책 때마다 보유·거래세도 대폭 인상했다. 투기를 막겠다는 게 이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는 이분법 구도도 선명했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이란 논리로 증세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가 규제하면 잠잠한 듯하다가 집값이 크게 뛰기를 반복했다.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를 짓누르자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이 튀어 올랐다. 마용성을 누르니 이번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이어 ‘수용성’(수원·용인·성남)으로 번졌다. 수도권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지방 주요 도시로 들불처럼 번졌다.

대책은 두더지 잡기식 땜질 처방이었다. 공급 확대가 아닌 수요 억제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 있다 보니 ‘예고된 결과’였다. 화들짝 놀란 정부의 규제는 갈수록 강도가 세졌다. 규제가 서울 강남권에서 수도권 대부분으로 확산했다. 주택 보유세와 거래세를 올리고 대출을 조이는 등 쓸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했다. 핀셋 규제에서 전방위 규제로 바뀌었다. 집이 있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모두를 옥죄었다. 곳곳에서 ‘두더지’가 튀어 오르니 ‘뿅망치’를 마구 두드려 댔다. 규제의 무차별 난사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민심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집이 있는 사람은 “목적은 세금 뜯기다” “집값은 정부가 다 올려놓고 세금만 때리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서울에서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보유해 재산세가 상한선(30%)까지 오른 가구는 2017년 4만541가구에서 올해는 57만6294가구로 급증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정부가 ‘주택 사다리’를 걷어찼다며 절망감에 휩싸였다. 집값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정부 말만 믿고 집을 사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주택 마련은 이제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정부 정책은 집이 있는 자, 집이 없는 자 모두의 가슴에 울분과 절망을 남겼다.

이제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시장은 거꾸로 간다. ‘양치기 소년’이 됐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땜질 처방만 하다 보니 기존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경우가 허다했다. 뒤늦게 공급 확대책을 들고 나왔지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혼선도 불신을 키웠다.

정책 불신은 조세저항을 낳았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졌다. 바로 ‘언택트(Untact) 조세저항’이다. 많은 사람이 청와대 청원에 이어 검색어 올리기를 한다. 포털 사이트에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검색해 실시간 검색어(실검) 순위에 올리는 ‘실검 챌린지’에 나선다. ‘김현미 장관 거짓말’ ‘못 살겠다 세금폭탄’ ‘3040 문재인에 속았다’ 등을 올리며 지지자를 끌어모은다. 언택트의 주요 특징은 쏠림이다.

일방적으로, 땜질식으로 쏟아내는 정책으론 믿음을 얻지 못한다. 신뢰가 무너진 곳에선 정책의 선순환이 싹틀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은 ‘국민과의 대화’여야 한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예측할 수 있게 장기적인 청사진을 내놓고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김창규 경제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