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게 이들 종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님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그런데 이슬람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존경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더라.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를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한다.”
뜻밖이다. 그럼 무슬림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에 있는 교회에 있는 예수상. 십자가를 짊어진 채 예수가 쓰러져 있다. 예루살렘=백성호 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에 있는 교회에 있는 예수상. 십자가를 짊어진 채 예수가 쓰러져 있다. 예루살렘=백성호 기자

무슬림이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복잡하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다. 둘은 엄연히 물과 기름 아닌가.  
“하나씩 짚어보자.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에서는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GOD(갓)’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는 어떻게 부르나. 개신교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그럼 아랍어로는 하느님을 뭐라고 부르나. ‘알라’다.”
목수인 의부 요셉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는 어린 예수. 옆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쳐다보고 있다. 나자렛=백성호 기자

목수인 의부 요셉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는 어린 예수. 옆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쳐다보고 있다. 나자렛=백성호 기자

아랍권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지 않나. 그들은 ‘하느님(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나.
“맞다. 중동 지역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다. 이집트에도 콥트 기독교인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알라’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는 아랍어 기독교 성경에도 하느님은 ‘알라’라고 적혀 있다. 이슬람교 신자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아랍의 기독교인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러니 하느님과 알라는 서로 다른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건가.  
“이들 세 종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개의 가지와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심기가 불편한 기독교 신자도 있지 싶다.”
왜 그런가.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천가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천가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좀 전에는 이슬람교 신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슬림은 예수님을 선지자로서 존경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처럼 말이다. 예수님 역시 그런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구세주, 다시 말해 메시아로는 보질 않는다. 이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결정적 차이다.”
이슬람교는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질 않나.
“이슬람교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굳이 아들을 따로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 그럴까. 하느님이 직접 하면 되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을 직접 구원하면 되지, 굳이 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건 좀 따져봐야겠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간에게 원죄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죄를 대신 없애주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인간의 원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 성지. 예전에는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예루살렘=백성호 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 성지. 예전에는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예루살렘=백성호 기자

“기독교에는 원죄 개념이 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서 태어난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원죄 개념이 없다. 가령 이슬람교에서 갓난아기들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점점 자라면서 에고가 생기고, 죄의식도 덩달아 생긴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만, 이슬람교의 죄사함은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다. 중간에 누구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은 받아들이기 힘들겠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이유로 이슬람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예수’라는 구원의 징검다리가 없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기독교는 반드시 대전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 대전이 예수 그리스도다. ‘대전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산에 갈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교리 체계가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로 가면 된다고 믿는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된다고 믿는다.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놀란 표정이 보인다. 나자렛=백성호 기자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놀란 표정이 보인다. 나자렛=백성호 기자

그럼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만 보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이슬람교도 예수님이 처녀의 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기적)들도 인정한다. 그러니까 비범한 선지자로 보는 거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그런 선지자로 본다. 무함마드를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교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이적을 인정한다. [중앙포토]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교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이적을 인정한다. [중앙포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이게 유대교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아들’이 등장한다. 삼위일체론을 통해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더 닮았다.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이슬람교다.”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중앙포토]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중앙포토]

그럼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나.  
“한국 기독교는 유대교를 사촌 정도로 생각한다. 가까운 친인척의 느낌이다. 그런데 정작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구세주로 보지도 않고, 선지자로 보지도 않는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 성경이다. 원래부터  ‘바이블(성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유대교의 경전을 ‘구약’이라 고쳐 부르고, 자신들의 경전을 ‘신약’이라 불렀다. 이런 명칭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더라.”
이슬람을 테러와 폭력의 종교로 아는 이들도 꽤 많다. 어떻게 보나.  
“불교에도 어떤가. 착한 불교 신자가 있고, 나쁜 불교 신자도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착한 기독교인이 있고, 나쁜 기독교인도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착한 무슬림이 있고, 나쁜 무슬림이 있다. 제가 만난 무슬림들은 테러와 폭력을 일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더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무슬림 전체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테러나 폭력을 일삼기에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 때문에 모든 이슬람이 그런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른 기사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