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숨 쉴 공간을 허(許)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0.07.2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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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닷새 전 무죄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자 “지금 여기서 숨 쉬는 것조차 감사하다”고 말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 정의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는 말로 대법원에 감사했다. 수사와 재판의 굴레를 훌훌 털고 대권 가도로 다시 진군하게 된 감격을 표현한 것이리라. 정치적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사회생했으니 오죽했으랴.

이재명 무죄 대법 판결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장
수사에도 숨 쉴 공간 줘야

그러나 그에게 ‘숨 쉴 공간’을 내어준 대법원 판결문 어디에도 이 지사가 “진실이며 정의”라고 확인하는 대목은 없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영역을 확장했다는 평가는 있을지언정. 이 재판은 전국에 생중계될 만큼 논쟁적이었다. 1·2심에서 유무죄가 갈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한 건을 두고 대법관들은 무죄 7 대 유죄 5로 갈렸다. 다수 의견에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이 지사는 김명수 사법부 들어 이뤄진 진보 성향 인사들의 대법관 진입과 그에 따른 사법의 다수결 덕을 톡톡히 봤다. 13 대 0의 만장일치 판결을 한 양승태 사법부에선 기대하기 어려웠을 아슬아슬한 결말이니 말이다. 대법원 내부를 잘 아는 인사에게 판결 배경을 물었다.

“이 사건 쟁점은 두 가지다. 친형인 고(故) 이재선씨의 강제입원 시도와 관련해 2018년 TV 토론회 발언이 ‘공표’에 해당하는지와 ‘허위사실’인지 여부였다. 그 발언이 공직선거법 250조 1항의 공표인지부터 살폈다. 다수 의견은 토론회의 질의·답변 과정에서 오가는 문답은 ‘일방적으로 알리는’ 공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문즉답하는 토론회에선 사실과 의견이 뒤섞인다. 질문의 취지, 이해 방식에 따라 대답도 애매해진다.”

실제 TV토론회 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죠”라는 질문에 이 지사는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경우 팩트를 묻는 건지, 불법성을 묻는 건지 헷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소문 포럼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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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Breathing Space)’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질식해 토론이 죽는다. 다만 질의응답 시간이라도 주제와 관계없이 혼자서 일장 연설을 한다면 공표다. 결국 토론회 녹취록을 갖고 사후적으로 고소·고발하면 선거 결과를 판·검사의 사법판단으로 대체함으로써 국민의 의사로 뽑는다는 민주주의 자체가 몰각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관들은 허위사실 여부도 따졌다. 형 강제 입원(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1·2심이 공히 무죄라고 한 터라 이 지사 답변을 허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또 합의 과정에서 보수 논객 변희재씨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를 ‘종북’ ‘주사파’ 등으로 표현한 사건에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재작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참고했다고 한다. 9년 전 광우병 의혹을 보도한 PD수첩 사건 관련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숨 쉴 공간이 필요한 건 이 지사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숨이 막혀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과거의 지역감정보다 요즘의 진영감정이 더 분열적이고 적대적이다. 남남(南南) 진영 갈등은 남북(南北) 체제 갈등만큼이나 골이 깊게 패여가고 있다. 아무 대책 없이 나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국민들의 숨통을 조여 분노지수를 높이고 있다. 정부기관 숨막힘의 대표주자는 검찰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부임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 목조르기부터 개시했다. ‘내 명을 거역했다’ ‘항명’ ‘내 지시를 잘라먹고’ 등의 거친 언사를 숨돌릴 틈 없이 내놨다. 윤 총장은 유폐됐고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거대한 암초라도 만난 듯 올스톱됐다.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후원금 횡령 의혹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진상규명하라는 각계 요구는 묵살되고 있다.

유일하게 진전을 보이는 건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독자수사권을 쥐여준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이다. 직장에서 해고된 전직 기자는 이미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라는 희한한 사유와 함께 구속됐고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타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음모의 냄새까진 아니어도 부당(不當)의 냄새가 난다. 추 장관은 공정한 수사가 숨 쉴 공간을 주라.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마스크 쓰느라 숨쉬기 어려운데 답답한 일만 쌓여간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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