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방지 분야 신생 바이오기업 A사는 최근 연구원과 재무 등 관리 담당 경력직원을 뽑고 있다. 특히 관리 담당 직원 두 사람 자리에 60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에는 대기업 계열의 전자회사나 정유회사 재직자 등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업력이 길지 않고, 아직 기업공개(IPO) 계획도 없으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상황도 아닌 소규모 바이오 기업인데도 이랬다. 이 회사는 그간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자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식으로 인재를 충원해 왔다.
수십억 주식 대박 SK바이오팜 효과 #신생 회사 관리직 경력 둘 뽑는데 #대기업 출신 등 60명 넘게 지원 #벤처투자액 25%가 바이오기업
이 회사 관계자는 19일 “지난해 일부 국내 바이오기업의 미국 식품의약처(FDA) 임상 실패 소식에 꺾이는 듯했던 업계 분위기가 최근 SK바이오팜의 기업공개(IPO) 성공으로 다시 반전되고 있다”고 평했다.
‘SK바이오팜 효과’ 덕에 바이오 업계에 인재와 투자가 몰리고 있다. 이달 2일 상장한 SK바이오팜의 직원들은 우리사주로 총 244만6931주(주당 4만9000원)를 배정받았다. 이 회사 임직원 수는 207명으로, 1인당 평균 1만1820주다. 덕분에 이 회사 직원들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이 됐다. 바이오 기업 일자리는 덩달아 ‘금값’이 됐다.
사실 SK바이오팜 효과가 아니어도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투자금도 몰린다. 19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7463억원의 전체 신규투자금 중 30.1%(2244억원)가 바이오·의료 분야에 투자됐다. 지난해 전체 투자금 중 바이오·의료 부문 투자비중은 25.8%였다.
인재도 꾸준히 유입 중이다. 한 예로 2012년 대전에서 발족한 혁신 신약 전문가들의 자발적 학술 토론 모임인 ‘혁신신약살롱’의 회원 수는 현재 5580명에 이른다. 이 모임의 회원 수는 지난해 7월 현재 4100여 명이었다.
반대로 SK바이오팜 직원 중에선 이탈을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다. 현행법상 배정받은 우리사주는 보호예수에 묶여 1년 이후에나 매도할 수 있지만, 퇴사할 경우엔 이를 즉시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26만9500원까지 올랐던 이 회사 주가는 현재 19만1000원(17일 종가 기준)이다. SK바이오팜 조정우 대표까지 나서서 “우리 사주는 노후자금으로 생각하고 업무에 매진해 달라”고 임직원들에 당부하지만 퇴사자가 속출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한 벤처캐피탈사가 투자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역을 선발하는 데 여기에만 10명이 넘는 SK바이오팜 직원들이 지원했다는 소문이 돈다.
바이오 업계 내의 인력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난해 대규모 기술수출에 성공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의 경우 임직원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1년 5개월(19년 사업보고서 기준)에 그친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신라젠 임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도 2년(남자 연구·관리 기준)이다.
물론 현재의 바이오산업 일자리 인기 현상을 놓고,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때가 생각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견 제약업체의 한 임원은 “연구 쪽이야 기본적으로 약학이나 생물학, 생화학 등 소수의 전문가에게 열려있는 자리이니 일자리가 많다고 볼 수도 없고, 채용이 이뤄져도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라며 “기업공개(IPO)가 ‘바이오산업의 꽃’이라고는 하지만 SK바이오팜처럼 ‘대박’이 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인 만큼 커리어 개발과 관련해 직원들에게 주의 깊은 선택을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