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드레스 권한 우리 엄마 '네가 이긴다는 걸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2020.07.20 11:04

BBC 다큐멘터리로 이후 뮤지컬, 영화로 제작된 드래그퀸 이야기의 주인공 제이미 캠벨(오른쪽)과 어머니 마가렛. [사진 쇼노트]

BBC 다큐멘터리로 이후 뮤지컬, 영화로 제작된 드래그퀸 이야기의 주인공 제이미 캠벨(오른쪽)과 어머니 마가렛. [사진 쇼노트]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는 나를 때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영국 중북부의 도시 더럼 태생인 제이미 캠벨(26)이 9년 전 다큐멘터리 제작사에 e메일을 보냈던 이유다. e메일은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 취재를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캠벨은 다른 남학생들이 입은 정장 양복 대신 화려한 검은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뮤지컬 '제이미' 실제 주인공 제이미 캠벨

화려한 여장을 하고 무대와 파티를 즐기는 소년의 이야기인 다큐멘터리 ‘제이미: 16세의 드래그 퀸’은 이렇게 제작됐고 2011년 BBC에서 방영해 영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그의 이야기는 2017년 뮤지컬로 나와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했고, 영국 17개 지역에서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북미에서는 공연 실황을 영화관에서 상영했으며 내년 초 뮤지컬 영화로도 나온다. 뮤지컬 ‘제이미’는 이달 4일부터 한국 무대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본지와 e메일 인터뷰에서 제이미는 “졸업 파티에 들어가다 두드려 맞을까봐 두려워 다큐멘터리 팀을 불렀다”며 “그때 e메일을 안 보냈으면 내 삶이 완전히 달라져있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소년 캠벨에게 여자 옷을 입는 건 기쁨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자 옷을 찾아입곤 했다. 엄마의 커다란 꽃무늬 가운을 입고 수건을 머리에 둘러 긴 머리처럼 꾸몄다. 환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이 됐던 그 순간이 최고로 행복했다.”

하지만 현실은 고단했다. “노동자 계층이 많은 더럼은 그 어떤 곳보다도 여성은 여성, 남성은 확실히 남성다운 곳이고 이 생각을 의심하는 순간 괴물이 되는 게 당연한 동네다.” 그는 “학교에서 따돌림과 놀림이 계속됐고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14세에 학교 교실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영어 수업 시간에 동성애에 대한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을 서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게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는데, 이후 학교에서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나를 괴롭혔다.”

그런 그에게 드레스를 권한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다. 혼란스럽고 고통받던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하이힐을 선물한 어머니 마가렛은 “졸업 파티에 양복이 아닌 드레스를 입고 가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캠벨은 “‘그래 맞아, 왜 안돼?’라고 생각했다. 더럼에는 소년에게 드레스 파는 곳이 없어서 영국 북동부의 빈티지 가게를 전부 뒤져 중국에서 온 검은 레이스 드레스를 골랐다”고 했다.

캠벨은 “어머니는 내가 양복을 입고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라며 “나를 괴롭혔던 모든 이들에게 ‘너희들이 이기지 못했다’는 선언을 하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행복한가였다. 레이스 드레스를 좋아하는 소년을 대다수가 받아들이지 못할 때 엄마는 내 행복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기 사자를 지키는 어미 사자처럼 내 뒤에 늘 있었고 나를 100% 보호했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제이미'의 한 장면. [사진 쇼노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제이미'의 한 장면. [사진 쇼노트]

BBC 다큐멘터리에는 그가 졸업 파티에 들어가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그는 “파티장으로 가는 차에서 나는 말그대로 벌벌 떨었다. 이미 학부형들이 ‘역겹다’는 항의를 보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학교 측의 ‘드레스는 안된다’는 확실한 메시지도 받았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파티장 앞에서 한 교사가 그의 입장을 제지하자 학생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와 그를 불러들였다. 캠벨은 “다큐멘터리는 내게 축복과도 같은 계기였다”며 “내 삶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다고 했다. “가끔은 내가 조언할 수 없을 정도의 진지한 고민상담까지 받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준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에게는 ‘괴롭힘은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고 조언한다. 내가 모든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터널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고, 그 빛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캠벨은 또 “모든 사람이 10대에 드래그 퀸이 되고 싶거나 드레스를 입고 졸업 파티에 가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그들 자신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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