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재자!" 신발 던진 英 명문대생…원자바오의 용서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신발 투척' 세례를 당했던 대표적인 당대의 세계 리더들이다. 이외에도 많다.

검찰이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50대 남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과거 해외 사례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이런 게 바로 자유사회"

이른바 '부시의 구두'로 불리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발 투척 사건은 2000년대 들어 벌어진 세계 정치 리더들에 대한 '신발 투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사건은 부시 대통령이 2008년 12월 14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누리 알말리키 총리와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라크인 방송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신발 두짝을 잇달아 던지며 "이건 이라크인이 보내는 선물이자 작별 키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2008년 12월 1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기자회견 도중 현지 기자가 기습적으로 던진 신발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 있다. 부시가 기자회견장에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자 문타다르 알자이디 알바그다디아TV 기자가 ’이건 이라크인이 보내는 작별 키스다. 이 XXX“라며 신발 두 짝을 잇달아 던졌다. ①~③번 사진은 부시가 첫 번째 신발을 피하는 장면. ④번은 알자이디가 두 번째 신발을 던지는 모습. [AP=연합뉴스]

2008년 12월 1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기자회견 도중 현지 기자가 기습적으로 던진 신발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 있다. 부시가 기자회견장에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자 문타다르 알자이디 알바그다디아TV 기자가 ’이건 이라크인이 보내는 작별 키스다. 이 XXX“라며 신발 두 짝을 잇달아 던졌다. ①~③번 사진은 부시가 첫 번째 신발을 피하는 장면. ④번은 알자이디가 두 번째 신발을 던지는 모습. [AP=연합뉴스]

두 신발 모두 피한 부시는 "이렇게라도 관심을 끌고 싶은 것을 이해한다. 이런 게 바로 자유사회"라며 넘어갔다. 느닷없는 봉변에도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편으론 자신이 결정한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가 올바른 행동이었음을 강조하는 멘트이기도 했다.

알자이디 기자는 외국 원수를 공격한 죄로 12개월형을 선고받고 9개월간 옥살이를 한 뒤 풀려났다. 이후 유럽에서 이라크전 피해자 지원단체를 세워 운영하다가 이라크에 돌아가 2018년 이라크 총선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계속 공부할 기회 주길 바라"

부시 대통령 사건 이후 정치 지도자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신발 투척'은 줄을 이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재임 시절인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나 신발 투척 세례를 받았다.

첫 사건은 원 총리가 2009년 2월 2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연 도중 발생했다. 뒷자리에 있던 독일 국적의 한 백인 남학생이 신발을 던졌다. 그러면서 티벳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케임브리지가 어떻게 독재자에게 존경을 나타낼 수 있냐"며 "일어나 저항하라"고 말했다.

신발은 단상 1m 앞에 떨어졌다. 원 총리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발을 던진 학생은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2009년 2월 2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연을 하던 도중 '신발 투척' 봉변을 당했다. 당시 한 독일 출신 남학생이 던진 신발을 경호원이 들고 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9년 2월 2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연을 하던 도중 '신발 투척' 봉변을 당했다. 당시 한 독일 출신 남학생이 던진 신발을 경호원이 들고 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 총리는 이날 예정됐던 원고대로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비열한 행동은 중국과 영국 간 우정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런던 주재 중국대사관을 통해 학생에 대한 선처 의사를 밝혔다.

케임브리지대 총장이 공식 사과를 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원 총리는 현지 대사를 통해 "젊은 학생은 공부가 중요하다. 이 학생에게 계속 공부할 기회를 주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또 '방탕한 자식이 회개하는 것은 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浪子回頭金不換)'란 속담을 들면서 "학생이 잘못을 뉘우치고 더욱 발전된 안목으로 중국의 진면모를 제대로 이해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2010년 10월엔 터키 수도 앙카라를 방문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도중 차량 안에서 위구르족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시위대는 신발을 던지면서 중국 당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비판했다. 원 총리는 이 사건에 대해 따로 반응을 내진 않았다.

◇"시위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봉변을 예상한 경우였다. 2012년 2월 2일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반 총장은 차량 안에서 시위대가 던진 신발들을 받아들였다.

반 총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지만, 주민들은 "이스라엘 편"이라며 반 총장을 싸잡아 욕하는 분위기였다.

2012년 2월 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방문한 가운데, 시위대가 차량을 향해 신발을 던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2년 2월 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방문한 가운데, 시위대가 차량을 향해 신발을 던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가자지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위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측의 경호를 받으며 겨우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측은 반 총장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반 총장은 "가자지구의 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시위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걱정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