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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왜 부동산만 보느냐고 묻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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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후연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후연 기자

이후연 기자

대학생 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졸업한 지 꽤 오래된 선배들을 만나고 왔던 날인 것 같다. “진짜 우리는 나이 먹어서도 부동산 얘기는 하지 말자. 너무 별로지 않냐?” 친구들도 동의했다. “진짜 얼마나 할 얘기가 없으면 저렇게 재미없는 얘기나 하고 그러냐” “맞아. 만약 누군가 부동산 얘기 꺼내면 ‘야, 너 왜 이렇게 됐냐’ 바로 지적해주자.”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30대 친구들은 부동산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부동산, 정확히는 아파트다. ‘너무 별로다’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그 졸업한 선배들 나이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훨씬 어린 것 같은데, 지금은 나보다 몇 년 더 어린 친구들도 부동산 얘기를 한다. 세대가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 같다. 어디에 임장을 갔다 왔다, 여기가 이렇게 올랐다더라 등등. 정부가 발표하는 부동산 정책도 핫 이슈다. 분노와 체념, 혹은 (가끔) 긍정과 기대가 여과 없이 표출된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에서 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에서 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일부 전문가들은 30대가 부동산에 몰입하는 것을 경고한다.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는 우려도 나왔다. 취재하다가 만난 한 어르신은 “젊은 사람들이 맨날 아파트 얘기만 하며 앉아 있고. 이러니 나라에 희망이나 미래가 있겠어?”라고 지적했다. “젊었을 때 땀 흘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그게 진짜지.”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야, 너 왜 이렇게 됐냐’ 고 지적하는 건 ‘풋풋한’ 20~30대가 아니라 주로 그들보다 2~3배 더 사신 분들이다. 자기합리화인지 모르겠지만, 10여년 전 대화를 돌이켜봐도 지금이 부끄럽지는 않다. 그저 ‘그때가 참 좋았다’ 싶다.

희망과 미래가 다른 곳에도 있었다면 그쪽으로 눈을 안 돌렸을 리 없다. 그게 창업이 됐든, 도전이 됐든, 확장이 됐든, 개업이 됐든 뭐든 간에. 적어도 20대와 30대, 40대까지라면 그 희망과 미래에 베팅했을 수 있다. 그런 게 사라진 지 오래인데, 부동산에 몰입하는 젊은 사람들만 탓하는 것은 억울하다.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해하느니 뭐라도 눈에 보이는 부동산을 잡자는 건데. 요행을 바라기보다 대다수는 열심히 살아보려는 몸부림인 것 같은데, 이게 참 어렵다.

새로 선택할 수 있는 희망과 미래를 제시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부동산을 투기라고만 생각해 압박하면 몸부림치는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희망과 미래가 보이는 다른 무언가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아주길 바라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걸까. 그런 게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갈 텐데. 지금은 눈길을 끄는 게 부동산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쪽만 보느냐고 지적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이게 마냥 젊은 세대만의 문제일까.

이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