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탐정사무소’ 등장 초읽기…한국판 셜록 홈즈 등장하나

중앙일보

입력 2020.07.19 17:17

업데이트 2020.07.19 21:02

#1. 2016년 10월, 경기도 오산의 한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승용차 여섯 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처음 경찰은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바꾼 앞차 윤모(55)씨에게 80%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윤씨의 의뢰를 받은 민간조사업체는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뒤따르던 차가 규정 속도인 60km보다 높은 86km로 달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경찰은 기존 판단을 뒤집고 윤씨의 과실을 20%로 조정했다.

탐정 이미지. [셔터스톡]

탐정 이미지. [셔터스톡]

#2. 지난 4월 국내 한 기업 대표에게 협박물이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일본에서 발송한 소포 안에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부엌칼, 여자 속옷, 마네킹 손가락 5개 등이 들어있었다. 의뢰를 받은 민간조사업체는 아세톤 등 화학물질을 사용해 물건에 찍힌 지문을 검출했다. '협박범을 찾아달라'며 경찰에 신고한 대표는 이 지문을 소포와 함께 경찰에 제출했다. 민간조사 업체 대표는 "해외에서 '탐정'으로 불리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탐정이란 탐문·관찰 등 합당한 수단으로 ‘특정 사실관계를 파악하거나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직업’이다. 탐정의 주요 업무는 교통사고나 화재, 보험 사기 등을 조사하는 일부터 기업부정이나 해외도피자를 찾아내는 일까지 다양하다. 사건 해결 기여도를 인정받아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모두 탐정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일본·독일에서 각각 2만~6만명의 탐정이 활동하고 있다.

8월 5일부터 한국에서도 ‘탐정 사무소’ 개업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다. 한국은 1977년 이후 신용정보법에 따라 탐정업과 탐정 호칭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사생활 등 개별법을 침해하지 않는 탐정 업무는 당장에라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국회가 지난 2월 신용정보법에서 탐정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6개월 뒤인 8월부터 적용된다.

아파트 계단에서 잠복 중인 탐정 [중앙포토]

아파트 계단에서 잠복 중인 탐정 [중앙포토]

"억울할 때 '탐정' 검색하세요" 

한국에는 사실상 탐정업인 민간조사원을 전업 또는 겸업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이미 2000여명이다. 이들은 주로 교통사고 위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실제 수사 결과나 법원 판결을 뒤집기도 한다. 유우종 한국탐정중앙회 회장은 "이번 법 개정으로 민간조사원이 대부분 탐정 사무소를 개업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인터넷에 '탐정'을 검색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탐정 일을 한다고 밝힌 한 4년 차 민간조사원은 "탐정은 억울한 사람이 찾아오는 최종 목적지"라고 말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받지 못하거나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지금도 많이 찾아온다"며 "생업에 바쁘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 수백만 원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유 회장 역시 "아무리 훌륭한 공권력이라도 시민들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지는 못한다"며 "공정한 사건 해결을 위해 탐정은 필요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탐정 난립, 사생활 침해 우려 

검증되지 않은 탐정의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탐정 자격증은 경찰청에 등록한 탐정협회 9곳에서 발급해준다. 권대원 대한탐정협회 부회장은 "탐정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아직 검증된 탐정 자격 제도가 정착돼있지 않다"며 "기존 흥신소 업무를 그대로 하려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권 부회장은 "탐정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라며 "경찰청 관리를 지금보다 강화하거나 공인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조사중앙회는 8월 5일부터 '민간탐정중앙회'로 이름을 바꾼다. 중앙회가 사용할 새 로고 [민간조사중앙회 ]

민간조사중앙회는 8월 5일부터 '민간탐정중앙회'로 이름을 바꾼다. 중앙회가 사용할 새 로고 [민간조사중앙회 ]

사생활 침해 우려도 나온다. 유우종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위치정보법 등 제재하는 법이 많다"며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탐정 활동을 보장한다면 사생활 침해는 기우”라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호주의 경우 탐정의 불법행위 시 자격 박탈 및 보증인 3인에 대한 법적 책임 물을 수 있다"며 "한국 탐정도 엄격한 윤리 의식을 확보하는 것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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