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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언관이 미운 숙종, 대청 온돌방 뜯어내고 마루 깔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1) 

선정전 앞마당 궐내각사

창덕궁의 서궐내각사가 일반적인 업무를 보던 관리의 일터였다면 선정전 앞에는 왕의 국정 업무와 밀접한 보좌 기구가 있었다. 바로 창덕궁의 동쪽 궐내각사이다. 주로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던 여러 기구로 왕을 보좌하고 왕명출납을 맡았던 승정원, 언관의 대청, 대신의 회의 공간 빈청, 왕의 시중을 들던 내시의 공간인 내반원과 음식을 장만하고 그 음식을 담는 그릇을 관리했던 사옹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대청, 승정원, 사옹원의 위치를 동궐도에서 확인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동궐도 선정전 앞 궐내각사 부분)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일을 맡은 승지가 근무하던 부서이다. 국정의 모든 일이 문서로 왕에게 보고 되고 신하에게 하달되는데, 그 문서를 들이고 내는 일을 맡았다는 것은 국정 전반에 걸친 정보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승지는 밤이고 낮이고 왕의 측근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으니 승정원이 임금의 집무실인 편전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대에 선정전 옆의 희정당이 편전으로 사용되었을 때도 승정원은 왕의 최측근에서 대기하는 위치에 있었다.

동궐도. [사진 Wikimedia Commons]

동궐도. [사진 Wikimedia Commons]

창덕궁 선정전. 선정전 앞에는 왕의 국정 업무와 밀접한 보좌 기구들이 있었는데, 바로 창덕궁의 동쪽 궐내각사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창덕궁 선정전. 선정전 앞에는 왕의 국정 업무와 밀접한 보좌 기구들이 있었는데, 바로 창덕궁의 동쪽 궐내각사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내반원의 업무는 궁궐출입 확인, 왕명전달, 수라음식 감독, 문지키기, 청소, 궁 안의 잡무를 맡았다. 내반원은 내시부에 소속되었던 장번(長番)의 내시가 근무하던 장소다. 종2품직 상선은 내시부의 수장으로 정원은 2명이다. 기본적으로 임금의 수라를 책임지며 임금을 보좌하는 일을 맡는다. 업무를 분담하고 서로 교대하여 번을 선다. 한 명은 수라간을 지휘하여 임금, 중전, 대비 등이 수라를 챙기고 다른 한 명은 내시의 규율을 감찰하는 내시부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왕의 주변에는 내시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상선 둘은 교대를 하며 왕의 곁을 지켰다. 상선의 직급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차관급으로 대통령비서실의 총무비서관과 비슷하다. 승정원의 승지가 상위개념의 임금 비서기구 역할을 했다고 보면 내시부의 상선은 임금의 옥체를 모시는 수행원으로 늘 임금과 함께하던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해도 될듯하다.

사옹원에 행차한 영조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되었다. 16세의 나이로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된 영조는 7년간 직무를 수행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되었다. 16세의 나이로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된 영조는 7년간 직무를 수행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사옹원(司饔院)은 임금의 수라 뿐 아니라 그 음식을 담는 그릇도 관리를 했다. 조선시대 왕실의 그릇을 제작하는 가마를 사옹원에서 운영했고 이를 지방에 두고 분원이라고 불렀다. 경기도 광주의 분원이 조선시대 왕실의 그릇을 공급하던 가마였다. 분원은 왕실 자기를 공급하던 곳이니 만큼 당대의 뛰어난 도공이 최고 품질의 그릇을 만들었고, 조선 분원 자기는 중국 황실에서까지 공급을 요청해올 만큼 품질이 우수했다.

왕실에서는 사옹원 분원에서 제작되는 그릇의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옹원의 총책임자 도제조는 정승이 겸임하고, 제조 4명 중 3명과 부제조 5명 중 4명은 국왕의 친척인 종친이 맡았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되었다. 16세의 나이로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된 영조는 7년간 직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훗날 영조는 자신이 사옹원 도제조에 임명된 지 61주년이 되던 해인 1770년 7월 4일 사옹원에 행차해 사옹원 관원에게 직접 말을 하사했다. 신하에게 말을 하사한 이유는 영조가 1710년 사옹원 도제조로서 진연(進宴)을 준비한 공로로 숙종에게 말을 하사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갑론을박으로 늘 시끄러운 대청

동궐도에 보면 숙장문 밖, 인정전 서 행각 남쪽 끝에 대청이 있었다. 대청은 한 관서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사헌부와 사간원 언관이 대기하면서 협의를 하던 회의실이었다. 『한경지략』에 대청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관이 주계할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지체하는 곳이다. 이 대청이 옛날에는 온돌방이 있었으나 숙종 때 대관이 간쟁하는 풍습을 숭상해 비록 추운 날씨라도 대청에 와 앉아서 논계하기를 그치지 않는 일이 많으므로 숙종이 이를 꺼려 온돌방을 없애버렸다. 이 뒤부터 청마루 뿐이고 온돌방은 없어졌다 한다”고 적고 있다.

사헌부 관리는 특별히 임금이나 중국의 사신이 드나들던 돈화문으로 출입했다. 사헌부의 위세를 알 수 있는 사실 중 하나이다. 사헌부의 직무 가운데는 사간원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이 두 기관의 관원을 병칭할 때는 대간이라고 하는데, 사헌부의 관원만을 칭할 때는 대관(臺官)이라 했다. 그들은 왕의 잘못을 거침없이 논박했고(간쟁, 諫爭), 왕명이 잘못되었을 경우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으며(봉박, 封駁), 관리의 임용이나 법령의 시행에 이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서경, 署經).

창덕궁 인정전. 동궐도에 보면 숙장문 밖, 인정전 서 행각 남쪽 끝에 대청이 있었다. 대청은 사헌부와 사간원 언관들이 대기하면서 협의를 하던 회의실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창덕궁 인정전. 동궐도에 보면 숙장문 밖, 인정전 서 행각 남쪽 끝에 대청이 있었다. 대청은 사헌부와 사간원 언관들이 대기하면서 협의를 하던 회의실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은 낮이나 밤이나 대청에 모여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며 그 기세가 대단했다.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고위관료의 행적이나 외부에서 올리는 상소문을 왕에게 가려 올리고 그 비답(批答)이 늦어질 경우 독촉해 기어이 답을 얻어냈다. 이러한 꼴을 보기 싫었던 숙종이 단행한 조치는 후세에 일반 가옥의 마루구조를 지칭하는 대청마루라는 말로 남았다. 한겨울의 대청마루는 얼마나 추웠을까. 그러나 실록을 보면 숙종의 이런 극단적인 조치도 이들의 기세를 꺾는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언관이 임금께 승정원을 통해 상소를 올리면 임금은 어떤 형식으로라도 이에 대한 가부의 비답(批答)을 내려야 했다. 만약 비답을 내리지 않고 묵혀두거나 묵살하면 언관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또 임금이 부당한 비답을 내리면 그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여 재차 항의를 했다. 언관의 건의가 아무리 많더라도 임금은 밤잠을 설쳐가며 모두 읽고 비답을 작성하는 것이 관례였다. 성질 팍팍하신 숙종께서 오죽하면 대청 온돌을 뜯어냈을까. 어진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시끄러운 귀도 닫고 성질머리도 죽이고 밤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대간은 왕권과의 대립, 재상의 규탄, 백관의 논핵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뒤따랐다. 그에 따라 그들에게는 직권행사에 부응하는 여러 특권과 은전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과를 받지 않았고, 당상관도 이들의 인사를 받으면 정중하게 답례하도록 규정하는 등 우대를 받았다. 대간은 재직 중 함부로 체포되지 않고, 곧바로 지방관으로 전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왕을 직접 대면하여 직접 말할 수 있는 면계(面啓)의 배려를 받았다.

대간의 위치와 직무가 크고 중요했던 만큼 그들은 세가 출신으로서 풍부한 교양과 깊은 학식을 갖추고, 군주와 재상을 상대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론을 펼 수 있어야 했다. 나아가서 사세에 따라 왕권과 맞서게 되므로 특별한 강직성이 요구되었다. 언관에게 비판받던 인사권을 가진 선배 관료는 언관직 출신 후배를 차별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선의 관료제도 운영이 상당히 건전했고 건강했음을 뜻한다. 사헌부는 이와 같은 기능을 계속 유지하면서 존속해오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관제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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