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엄마 원미경 "가족은 '멜팅 팟'이 아니라 '샐러드 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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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엄마 진숙 역 원미경. 남편 상식(정진영)과의 오랜 오해를를 풀고 화사한 미소를 찾았다. [방송캡처]

21일 종영하는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분명 따뜻한 가족드라마지만, 뻔한 가족드라마가 아니다.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 동성애와 졸혼 등 자극적인 설정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데도, 결국 시청자들의 마음에 남는 건 각자 ‘내 가족’의 현실이다.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따질 수도 없을 사소하고도 복잡한 이유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속성을 꿰뚫어 보여줘서다.

배우 원미경. [사진 tvN]

그 진한 여운의 중심에 서있는 엄마 진숙 역의 배우 원미경(60)을 지난 16일 전화통화로 만났다. 미국 버지니아주 게인스빌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2월부터 한국에 혼자 머무르며 매일 미국의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했다는 그는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통화 내용이 달라졌다. 가족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됐다”고 털어놨다. “다른 가족 구성원의 입장이 한번 돼볼 수 있는 기회를 드라마가 만들어준 것 같다”면서다.

“전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희생하고 노력해서 힘들게 다 해줬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그동안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구나 깨닫게 된 거죠.”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촬영 중인 배우 원미경. [사진 tvN]

드라마 속의 진숙도 헌신적인 엄마다. 트럭운전사 상식(정진영)과 결혼해 은주(추자현)ㆍ은희(한예리)ㆍ지우(신재하) 남매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남편이 ‘두집 살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따져묻지 못했다. 미혼모로 결혼했다는 자격지심에 원망과 슬픔을 숨긴 채 산다. 남편 상식 역시 진숙이 은주의 친부와 연락하며 지낸다고 오해하지만 학력 컴플렉스 때문에 이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 분노를 가부장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방식으로 풀면서 가족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족의 문제가 뭔지 알아? 할 말을 안 하는 거야. 먼지처럼 털어낼 수 있는 일을 세월에 묵혀서 찐득찐득하게 굳게 해”라는 은희 친구 찬혁(김지석)의 말이 딱 맞는 사례다.

종영까지 2회를 남긴 ‘가족입니다’는 그 오해를 걷어내고 서로의 진심을 마주한 이들이 어떻게 회복되고 변화하는지, 그 과정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이메일로 1∼4회 대본을 받아보고 출연을 결심했다는 원미경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나이 60이 되면서 가족이 뭘까,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왔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타이밍이 참 묘하게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남편과 ‘우리 젊었을 때, 처음 만났을 때로 하루만이라도 돌아가보고 싶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드라마에서 남편이 22살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남편은 드라마 ‘애인’(1996), ‘신데렐라’(1997), ‘눈사람’(2003) 등을 연출한 이창순 전 MBC PD다. 2017년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현재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드라마 ‘임진왜란’(1985∼1986) 때 배우와 조연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1987년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1위로 입상한 뒤 TBC 공채 20기 탤런트로 데뷔한 원미경은 드라마 ‘사랑과 진실’(1984),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 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배우다. 당시 이미숙ㆍ이보희 등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혔을 정도였다. 2002년 드라마 ‘고백’ 이후 도미, 2016년 ‘가화만사성’으로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14년의 공백기가 있었다. 이번 드라마는 tvN 4부작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7) 이후 3년 만의 출연작이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가족은 “서로 있는 그대로 봐주는 가족”이다.
“전 사실 가족은 ‘멜팅 팟’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재료가 완전히 녹아서 하나가 돼버리는 것.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 샐러드 볼로 봐야 하는구나’ 싶어요. 하나씩 조각이 나서 각각의 맛을 내는 샐러드 볼이요. 원래 미국의 이민사회를 말하는 비유인데, 가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우리 애들도 셋이 다 각각이에요. 근데 거기에 내 기준을 내세우며 비난하곤 했죠. 각각을 인정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이 작품을 찍으며 내내 하게 됐어요.”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자매의 모습을 배우 원미경은 명장면으로 꼽았다. [방송캡처]

작품 속 3남매에 대한 마음도 실제 엄마처럼 애틋하다. “가족을 떠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는 큰딸 은주한테 마음이 가장 쓰이고, 막내 지우의 어설픈 변명에도 마음이 짠했다. 자매들끼리 다투고 화해하고 아파하는 장면에선 나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은희 역 한예리 배우와 밥 먹고 얘기하며 보낸 일도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했다.

“집에 가서 우리 애들하고도 예리하고 얘기하듯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심각하지 않은 얘기, 재미있는 얘기, 허접하고 쓸데없는 얘기를 좀 하려고요. 그동안은 자꾸 훈계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했었거든요. 그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얼마나 숨 막혔을까. 지금은 그런 게 너무 미안하네요.”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엄마 진숙 역 원미경. 주름 하나하나까지 감정 연기를 하고 있다. [방송캡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주름을 그대로 드러낸 자연스러운 외모로도 화제가 됐다. 보톡스와 필러 등 시술이 흔해진 세태에서 나이에 맞는 얼굴이 도리어 신기해져버린 것이다. 그가 얼굴 표정 하나에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희로애락이 드라마 감동의 깊이를 더했다. 평생 “점도 하나 안 빼봤다”는 그는 “배우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하는 게 배우”이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해야지 하는 거 없이 그냥 늙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어렸을 때 본 오드리 햅번의 자글자글 늙은 얼굴이 참 좋았어요. 전 그게 자연스럽더라고요.”

당분간 그는 미국에서 가족들과의 생활에 집중할 계획이다. 결혼한 큰딸을 비롯해 세 자녀 모두 성인이 됐지만 “크게 해주는 건 없어도 엄마가 옆에는 있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개척교회의 목사 사모 역할도 해야 한다”면서 “그러다 ‘정말 좋다’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을 만날 때 또 연기자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