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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명대사] 김지영 “난 안 예쁘니까…스스로 가두지 않길”

중앙일보

입력

“제가 대사를 기억을 못 해요. 대사를 못 외우는 편은 아닌데 작품이 끝나고 나서 대사를 물어보면 머릿속이 새까매져요.”

배우 김지영(46)에게 ‘내 인생의 명대사’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1995년 단막극으로 데뷔 이후 항상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온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대신 “이미지나 분위기로 작품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꼽은 명대사는 2014년 개봉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나온 “경계가 없다는 것, 그보다 특별한 건 없죠”입니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서 우주의 경계 조건을 설명하며 나온 얘기인데요. 루게릭병을 앓던 호킹의 “인간의 노력엔 어떤 한계도 없다”며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뭔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큰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이 대사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그가 경계를 깨고 나올 때마다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 때문입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에 8년간 출연했던 그는 ‘복길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20대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일부러 도시 여자, 센 악역을 찾아 나섰지만, 그것이 되려 자신을 옥죄인 셈입니다. 그는 “배우 인생을 대표할 만한 캐릭터를 만났는데 충분히 아껴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습니다.

2016년 다시금 정체기를 맞은 그는 휴지기를 갖는 것을 택했습니다. 일일극과 주말극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스스로 “연기가 패턴화됐다”고 느낀 탓입니다. “망가진 밭에 뭔가를 계속 심어봤자 더 안 좋은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 여긴 그는 밭을 갈아엎고 솎아내며 양분을 채워 넣었습니다. 특별출연ㆍ조연 등 분량에 관계없이 좋은 작품에 집중하면서 지난해 영화 ‘극한직업’과 ‘엑시트’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습니다. 4년 만에 복귀한 SBS 드라마 ‘굿캐스팅’과 JTBC ‘우아한 친구들’에서도 연이어 호평받고 있죠.

“지금도 ‘나 말고 예쁜 애들 많은데 뭐’ ‘내가 이 나이에 무슨’ 하면서 자신을 규정짓다가도 저를 둘러싼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쉽지는 않겠죠. 그런데 나부터 시작하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요. 내가 열리면 남도 열리고, 그러면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다들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그래픽=이경은

내 인생의 명대사

배우들이 직접 꼽은 자신의 명대사입니다. 작품의 울타리를 넘어 배우와 관객에게 울림이 컸던 인생의 명대사를 배우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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