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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없이 아파트 구입···법인 ‘주택사냥’ 브레이크 걸릴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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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법인을 통해 아파트를 매수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 아파트. 연합뉴스

세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법인을 통해 아파트를 매수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 아파트. 연합뉴스

2년 전 준공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중흥S클래스더퍼스트 아파트. 2018년 9월 준공 때 미분양 물량이 55가구였다. 1년이 지나도록 5가구도 팔리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한 달간 14가구가 나갔다. 미분양은 2월 말 30가구로 줄었고, 5월엔 모두 주인을 찾았다. 3월 이후 팔린 30가구 중 9가구를 일반인이 아닌 회사(법인)가 사 갔다. 한 회사가 두 채를 매수하기도 했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법인의 청주 아파트 매수 3년새 10배 #강남에선 주택 쪼개기 '신탁' 잇따라 #강력 규제에 매물 얼마나 나올지 관심

정부가 지난달 6·17대책에서 강력 규제하기로 한 법인의 주택 구매가 미분양 아파트를 단번에 인기 아파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법인 주택 매수는 6·17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이 된 청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청주는 집값이 곤두박질치고 미분양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청주 아파트값이 2015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50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었다. 15.5% 내렸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미분양관리지역이기도 했다. 2016년 9월 첫 지정부터 지난 5월까지 무려 44개월간이다.

준공 후 미분양 30% 법인 매수 

청주 주택시장 반전의 불씨는 방사광가속기였다. 유치전이 달아오른 지난해 말부터 시장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돌아섰고 거래도 크게 늘었다. 청주 유치가 확정된 5월의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2459건이었다. 2006년 1월 집계 이후 정부청사의 세종 이전 후광효과가 나타난 2012년 12월 2546건 다음으로 많다. 지난달 월간 상승률도 3.78%로 청주 역대 최고다. 6·17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이 되면서 미분양관리지역에서도 벗어났다.

반전을 과열로 만든 것은 법인과 외지인이다. 우선 외지인 거래가 부쩍 늘었다. 5월 청주 이외 지역 거주자의 거래가 970건으로 전체의 64.3%였다. 예년엔 40% 정도였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법인 거래다. 5월 개인이 판 집을 법인이 산 거래는 451건으로 4월(163건)의 3배에 가깝다. 전체 거래의 18.3%다. 아파트 법인 매수 비중은 2017년 0.9%에서 올해 1~5월 12.5%로 10배 넘게 급증했다. 같은 기간 서울도 0.5%에서 2.2%로 4배가 넘었다.

청주에서 비싼 단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신영지웰시티 1차(흥덕구 복대동)가 대표적이다. 10년 전 들어선 45층 초고층 아파트인 이 곳의 거래량은 줄곧 한 달에 10건 이하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96건으로 급증한 뒤 11월 179건까지 늘었다. 올해 들어 매달 30건 이상을 유지하다 5월 90건을 넘어섰다.
현재 28가구의 주인이 법인이다. 이 가운데 16가구가 지난해 10월 이후 거래됐다. 같은 층 두 가구를 구매한 법인이 있다.

법인 구매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우회 매수’다. 법인을 내세우면 개인의 주택 보유 수는 늘어나지 않는다.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이 아니더라도 3주택 이상이면 종합부동산세가 중과된다. 양도세 부담도 적다. 법인은 양도세 없이 법인세를 낸다. 최고 35%로 주택(최고 62%)보다 낮다.

자료: 한국감정원

자료: 한국감정원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덜하다. 지난해 10월 이후 법인이 매수한 신영지웰시티1차 16가구 중 12가구가 담보대출을 받았다. 거래가격 대비 담보대출 비율이 평균 80%다. 개인의 담보대출 한도는 70%다.

집값보다 대출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 거래된 124㎡ 가격은 4억5000만원이고, 채권최고액은 6억2520만원이다. 거래가격의 1.4배다. 대개 채권최고액이 대출금의 120%인 점을 고려하면 대출금이 집값보다 더 많고,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산 셈이 된다.

'전자상거래 소매업' 많아 

법인 업종을 보면 상당수 부동산과 관련이 없다. 인터넷 판매 같은 ‘전자상거래 소매업’이 많았다. 지난해 10월 이후 청주 중흥S클래스더퍼스트와 신영지웰시티1차를 매수한 법인 30곳 중 7곳이 이런 유형의 법인이었다. 세무사들은 “인원이나 자금이 별로 필요 없고 사무실도 따로 구할 필요 없이 손쉽게 설립할 수 있는 법인이 주로 주택 매수에 활용된다”고 전했다.

법인 소재지는 전국적으로 다양하다. 지난해 10월 이후 청주 중흥S클래스더퍼스트와 신영지웰시티1차를 매수한 법인 30곳 중 주소가 청주인 곳은 2곳에 불과하다. 서울은 물론 경남 합천, 강원 춘천, 제주 등에서도 왔다. 수도권에선 용인 업체가 6곳으로 많았다.

청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에서도 법인이 눈에 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는 법인 소유가 10가구다. 4가구가 지난해 6월 이후 거래됐다. 매수한 법인 가운데 ‘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으로 분류된 법인도 있다. 잠실동 리센츠 내 법인 소유는 6가구다. 4가구가 2018년 4월 이후 거래됐다. 1가구는 본인이 운영하는 법인에 판 ‘자전거래’다.

자료: 김종필 세무사

자료: 김종필 세무사

강남 아파트 보유 법인 중에는 신탁사도 있다. 잠실주공5단지 3가구가 지난해 7월 이후 신탁사로 소유권을 넘겼다. 신탁사는 수수료를 받고 집을 관리해준다. 보유세를 신탁사가 내다보니 집주인은 보유 주택 수를 쪼갤 수 있어 보유세 부담을 확 줄인다.

올해 공시가격 13억7200만원인 잠실주공5단지를 포함해 공시가격 총 25억원인 두 채를 가진 다주택자가 잠실주공5단지를 신탁사에 맡기면 올해 두 채 보유세가 총 1000만원이다. 본인이 둘 다 갖고 있으면 종부세가 중과돼 보유세가 3배인 2900여만원이다. 세금을 2000만원가량 덜 낸다. 신탁 수수료를 1000만원 내더라도 1000만원을 줄이는 셈이다.

보유세·양도세 급등

이들 법인은 6·17대책과 7·10대책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정부는 내년부터 법인 보유 주택에 최고 단일세율(3~6%)의 종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최고 9억원 공제와 세 부담 상한도 법인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주택 양도 때 법인세 세율을 현재 10~25%에서 20%포인트 더 높인다.

법인이 보유한 잠실주공5단지 내년 보유세가 현재 기준으론 1000만원 정도에서 4000만원 선으로 4배로 급증한다. 신탁하더라도 원래 소유자(위탁자)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신탁한 주택도 합쳐 종부세를 매긴다. 김종필 세무사는 “법인 매수자는 보유세와 양도세 강화를 앞두고 팔아야 할지, 보유할지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자료: 국토부

자료: 국토부

법인 보유세 중과를 피하려는 매물이 얼마나 나올지가 향후 시장 흐름의 주요 변수다. 급증하는 종부세와 양도세를 피하려면 내년 5월 말까지 팔아야 한다. 공급 확대 등 추가 부동산 대책도 예고돼 법인 매물의 추이를 단언하긴 어렵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강해 늘어난 보유세를 감내할 것이란 전망과 버티기에는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는 분석이 공존하다.

매물이 나오면 거래 숨통을 틔울 가능성은 있다. 서울에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2015년 이후 법인이 매수한 주택이 5701가구다. 이 중 1613가구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물 기근인 상황이기 때문에 법인 매물 물량이 많진 않다하더라도 매물 품귀를 해소하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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