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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요한 것은 알 권리가 아니라 제대로 알 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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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호 31면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햄버거병, 산분해, 전자레인지??? 오해의 피해자는 결국 소비자

최근 안산에서 큰 식중독 사고가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식중독균의 하나인 O-157:H7 대장균에 의해 어린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 보도에서 아쉬운 점은 전부 ‘햄버거병’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O-157균에 의한 식중독이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고 대량의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햄버거의 패티는 만드는 과정에서 고기 표면에 오염된 균이 패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패티를 속까지 익히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고기를 갈아서 만든 식품은 더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후 햄버거보다는 충분히 살균되지 않은 우유, 유기농 새싹, 샐러드 같은 것에서 더 심각한 O-157 식중독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햄버거병’이라고 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자칫 햄버거만 피하면 되는 것으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이 최초의 발병지가 아닌데 한 번 이름이 잘못 붙여지자 영원한 오명을 갖게 되었다. 잘못된 이름으로 인해 이런 엉뚱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질병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도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특정 지명을 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로 정말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네덜란드의 한 회사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자외선에 3초간 노출했을 때 바이러스 95%가량이 제거됐고, 6초간 노출했을 때엔 99%가 제거됐다고 발표했다. 여름에는 보통 온도가 높고, 자외선도 많고, 환기도 잘하기 때문에 감기바이러스는 한풀 꺾인다. 그런데 이번 것은 사람 간의 감염력이 워낙 높아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열에 약해 음식물은 가열하면 쉽게 사멸되는데, 아무것이나 70도가 넘게 가열할 수는 없다. 그런 경우에 세제나 살균제를 쓰고 자외선도 쓰지만, 자외선은 표면에만 효과가 있을 뿐, 속까지 침투하지 못한다. 고기나 채소 속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의심되어도 판매자가 그것을 미리 삶으면 상품성이 없어서 팔 수가 없다. 이런 고기나 채소를 열을 가해 익히지 않고 속까지 살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방사선 살균이다. 방사능은 방사선을 내는 물질이고, 방사선은 그런 물질이 내는 파장이 매우 짧은 빛이다. 식품을 원적외선으로 가열할 수도 있고, 가시광선, 자외선, X선으로 가열할 수도 있다. 만약 요리를 한다면 파장이 긴 것으로 골고루 익히는 것이 좋지만 살균을 한다면 침투성이 있고 에너지가 큰 파장이 짧은 것이 빠르고 효과적이다.

가열을 하면 식품의 많은 성분이 변성된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유해한 성분도 있지만, 소화력과 안전성 등 좋아지는 면이 훨씬 많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부터 어렵사리 땔감을 구하고, 불이 나거나 화상을 입기도 쉬운 불을 이용하여 요리하였다. 연료는 나무에서 숯, 가스, 석유, 전기 등으로 발전했고, 직화뿐 아니라 열풍, 마이크로파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성분의 변화가 적고 안전한 가열의 방법인 전자레인지를 가지고 온갖 괴담이 난무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생소하면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레인지 괴담은 많이 사라졌지만, 방사선에 대한 괴담은 여전하다.

방사선은 방사성 물질이 아니라 그냥 파장이 매우 짧은 빛이기 때문에 불 끄면 빛이 사라지듯이 쪼이고 나면 사라진다. 에너지는 크고 침투성이 좋아 포장을 한 상태에서 제품 전체를 투과하여 매우 예리한 공격을 한다. 기존의 가열 살균이 식품 전체를 매우 둔한 둔기로 세균이 죽을 때까지 물성과 향까지 변할 정도로 오랫동안 마구 때리는 방식이라면 방사선 살균은 매우 예리한 바늘을 이용하여 아주 짧게 급소를 찌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살짝만 조사하면 겉보기에는 마치 아무런 가열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맛, 향, 색의 변화가 적다. 그만큼 일반적인 가열에 비해 제품 내 성분의 변화가 적은 것이다. 그래서 고기, 야채, 향신료 등 고체이면서 열에 민감한 식품을 살균할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꼽히며, 우주식이나 군용 식량 등 절대적인 안전성이 필요한 제품은 이런 살균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조금씩 사용되던 방사선 살균은 단 한방의 조치로 완전히 사라진 바 있다. 바로 표시사항 때문이다. 소비자가 방사선과 방사능의 차이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알 권리’ 차원에서 방사선 살균을 한 제품은 표시하라고 하자 식품회사가 모두 그 살균법을 포기한 것이다. 방사선 조사식품은 비용을 더 들여 더 안전하게 만든 제품이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라는 소비자 오인과 일각의 공포 마케팅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혼합간장에 사용된 산분해간장의 사용비율을 알 권리 차원에서 주표시면에 표시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식품 대부분은 성분함량에 따라 분류 하지, 제조방법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데, 간장만큼은 제조 방법으로 분류해 정보표시면에 산분해간장 함량을 표기해왔다. 그런데 상표와 제품명 등을 표기하는 주표시면에 이를 표기하라는 것은 식품 산업에 유례가 없는 조치이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소비자들의 산분해에 대한 오해도 심한 편이다. 간장은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 단계로 분해해 감칠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백질은 분자의 크기가 너무 커서, 미각수용체를 통해 맛으로 느낄 수 없으므로 감칠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아미노산 단계로 분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미노산은 1 나노미터의 크기라 물리적인 칼로는 분해할 수 없고, 효소나 산 또는 알칼리 같은 분자적인 칼을 이용해야 한다. 만약에 일식집에서 회를 주문했는데 회칼은 너무나 날카로운 흉기라고 사용이 금지되어 아주 둔탁한 칼이나 손으로 찢어서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칼이 도구인지 흉기인지는 칼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에 달려 있는데, 마치 안전의 문제가 칼 자체에 있는 양 칼의 안전규정만 강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

회칼이 예리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 고기 속의 세균을 자르기에도 너무 크고, 세균보다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자르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한다. 분자적 칼이 필요한 것이다.

작년 일본이 고순도 불산의 수출을 금지하자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이 멈춘다고 큰 걱정을 하였다. 반도체 회로가 워낙 미세하여 아무리 정밀한 칼로도 깎아 낼 수 없고 사진을 찍듯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깎아 내야 한다. 화학산업은 여러 가지 강산과 알칼리 물질을 분자적 칼로 쓸 수 있지만, 식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중에서 완전히 깨끗하고 잔류물도 없이 안전한 염산과 수산화나트륨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염산하면 염산테러를 연상한다. 염산이 고농도일 때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양이 질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태풍과 해일이 무서운 것은 바람이나 물이 평소와 다른 무서운 성분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그 양이 평소보다 너무나 많아서이다.

염산도 고농도가 위험하지 저농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가장 깨끗한 산이다. 소금에서 만들어져 중화되면 다시 소금이 되므로 환경에도 영향이 없고 우리 몸에도 영향이 없다. 사실 우리 몸은 매일 1리터 이상의 염산을 위에 분비하여 미생물을 살균하고 단백질의 소화를 돕는다. 우리의 건강이 염산 덕분에 지켜지는 것이다.

염산을 중화할 때 사용하는 수산화나트륨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체 식품첨가물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만큼 산과 알칼리가 여러 식품산업에 사용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독 산분해간장만 주표시면에 표기하라고 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그나마 산분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바로잡힌 상태라면 모를까 방사선 조사식품과 같이 오해와 편견이 많은 상태에서는 자칫 공포 마케팅에 악용될 수 있다.

강산을 이용하여 단백질을 분해하기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최고의 품질과 안전성을 갖도록 제대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적의 설비와 공정개발에 많은 기술축적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부족한 자원 때문에 일찍부터 시작되어 그동안 국내기업이 수많은 연구와 투자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제조기술을 확보했는데 그런 노력은 너무 무시된다.

그렇게 해서 산분해간장 대신 전통간장이라도 많이 소비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감칠맛 제품이 있고 그중에는 워낙 가성비 경쟁이 심하여 전통의 방식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 시장에서 경쟁자는 전통간장이 아니라 저가의 외국산 간장이나 다른 감칠맛 소재이다. 어쩌면 알 권리라는 핑계로 시도되는 표시제도가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 버틸 경쟁력 있는 소재와 기술 하나를 없애 버리려는 시도가 될 수 있다.

국내에 가격 경쟁력이 있는 식품 소재는 별로 없다. 쌀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입하여 가격 경쟁력도 없다. 그런 환경에서 식품회사가 애써 만든 식품에 대해 그동안 국내에서 만들어진 비하가 너무 많았다. 라면, 소주, 초코파이, 커피믹스 등에는 괴담 수준의 비하도 많았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변변한 식품 소재 하나 없는 환경에서 식품회사들이 오로지 노력으로 성취해낸 결과물들로 해외에서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 국내에서 그런 노력을 너무 쉽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알 권리이고, 기업에 필요한 것은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평한 환경이다. 어쩌면 알권리를 앞세운 표시제도가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도 밀리지 않는 세계 최고의 품질과 안전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소재와 기술 하나를 없애 버리려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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