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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산 없는데…테슬라 보조금 1250만원은 특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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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호 15면

모델3

모델3

미국의 전기자동차 브랜드 테슬라(Tesla)가 한국에서 쾌속질주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테슬라 전기차 ‘모델3(사진)’는 올 상반기 국내에서 6839대 팔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자동차 ‘코나’(4078대), 기아자동차 ‘니로’(1942대), 쉐보레 ‘볼트EV’(1268대) 등을 모두 따돌렸다. 이 기간 국내에 전기차 2만2080대가 신규 등록됐는데 테슬라는 ‘모델X’ 등 다른 차종까지 더하면 시장점유율 약 32%를 가져갔다. 지난해 상반기 전체 판매량이 422대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올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 1위 #6839대 불티, 4078대 ‘코나’ 제쳐 #5369만원 차 4119만원에 사는 셈 #테슬라 마니아는 고성능에 만족 #미국은 제조사별 20만대까지 지원 #중국은 5200만원 차 이하만 해당 #인증 모두 마쳐 법적 문제 없지만 #지급 기준 합리적으로 손볼 필요

#지난 달엔 전월 대비 판매량이 1497% 급증, 전체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도 4위에 올랐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독일 3사’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다음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를 토대로 자율주행 등 신기술을 접목해 얼리어댑터(early adapter)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본연의 성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모델3 롱레인지 등급은 배터리 1회 충전당 최장 446㎞ 달리는 게 가능해 국내에 현존하는 전기차 중 주행 거리가 가장 길다. 또 모델3는 축간거리가 2875㎜로 스테디셀러인 현대차 ‘쏘나타’(2840㎜)보다 길어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넓은 실내 공간을 갖췄다.

인기 비결로 다른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가격이다. 테슬라 모델3는 국내 공식 판매 가격이 5369만원이다. 하지만 정부가 친환경의 전기차 보급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이 있어 소비자는 그만큼을 내지 않아도 된다. 모델3는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0년도 예산안에 따라 국고 보조금 800만원을 코나(820만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받고, 지방자치단체별 정책에 따른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서울은 450만원, 경북은 1000만원씩 추가로 보조금을 준다. 서울에 살면 총 1250만원의 보조금 혜택으로 4119만원이면 모델3를 살 수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테슬라 마니아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고성능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나랏돈이 드는 보조금 지급 체계가 테슬라처럼 국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기여도가 높지 않은 기업에 지나친 특혜로 작용한다며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테슬라의 경우 모델3가 환경부의 전기차 연비와 주행거리 기준을 충족하고, 현행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인증을 모두 마쳤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아도 법적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깐깐하게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 미국은 제조사별로 20만대까지만 정부에서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준다. 전기차 생산에 이미 탄력을 받은 기업엔 고액 보조금 지원이 불필요하고, 그 여력을 다른 후발주자 육성에 돌려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편이 생태계 구축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 테슬라의 경우 2018년 미국 현지 누적 판매량 20만대를 넘어서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중국 역시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차량 가격 30만 위안(약 5200만원) 이하로 설정했다. 고가 전기차에 저가 전기차 수준의 보조금을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단,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를 사면 가격대와 무관하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정부가 고가 전기차 위주의 테슬라를 견제해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같은 기준을 정했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2022년 이후 아예 전기차 보조금 자체를 폐지할 계획도 세웠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테슬라가 해외에서만 현지 정부나 소비자들에게 더 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슬라는 지난 5월 미국에서 모델3의 판매 가격을 기본 3만7990달러로 기존보다 2000달러 낮췄다. 미국 내 보조금이 없다는 것을 고려한 가격 정책이지만, 이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은 미국보다 700만원가량 비싸게 모델3를 접하게 됐다. 앞서 테슬라는 올 초 중국에서도 보조금 지급 기준을 넘어서자 32만 위안대였던 모델3 판매 가격을 29만 위안대로 내렸다. 한국에선 오히려 모델3 판매 가격이 지난해 8월 첫 출시될 당시(5239만원)보다 130만원 오른 상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물론 그렇다 해도 국내 소비자들은 100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고 테슬라의 전기차를 살 수 있다. 그러나 테슬라가 국내에서 지금 추세대로 올 한 해 1만5000대의 전기차를 판다고 가정했을 땐 2000억원 이상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는 국내에서 생산도, 일자리 창출도 하지 않는 기업이라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며 “상대적으로 국가 경제 기여도가 훨씬 높은 국산 전기차 브랜드 모델과 세금 기반의 보조금 혜택을 비슷하게 받으면서 이들 점유율만 잠식한다면 결국 국내 자동차 산업과 소비자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라는 취지는 좋지만, 지난해와 달리 테슬라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한 현 시점에선 해외처럼 보조금 지급 기준을 좀 더 합리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생태계 활성화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도입된 보조금이 특정 기업의 이익 극대화에만 쓰인다면 문제”라며 “테슬라도 국내 판매 가격을 해외보다 낮춰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관련해서 계획한 바가 없다”면서도 “내년 보조금 책정 때 고가 전기차에 대한 일부 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테슬라, 게 섰거라’…현대차, 2025년 전기차 100만대 생산

테슬라가 주목 받고 있는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국산 전기차가 얼마나 성장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주재하고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을 투입, 일자리 190만개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친환경)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등 세 가지 핵심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그린 뉴딜을 위해 전기차 113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전기차 수는 지난 5월에야 처음으로 누적 10만대를 넘어섰다.

산업계는 정부 계획에 즉각 화답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같은 날 경기도 고양의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2025년 전기차를 100만대 판매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 회사가 지난해 10월 제시한 ‘2025년까지 전기차 85만대 생산’ 목표치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23종 이상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정 수석부회장은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E-GMP’라는 독자적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플랫폼을 토대로 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NE(개발코드명)’의 내년 출시를 앞뒀다. 20분 내에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에 450㎞ 이상 달릴 수 있는 차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부문 파트너십 강화에도 나선 바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5월 삼성SDI 천안 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단독 회동했고, 지난 달엔 LG화학 오창 공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어 이달 7일엔 SK이노베이션 서산 공장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났다. 나란히 세계 톱10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로 성장한 세 기업의 총수를 모두 만나 전기차 분야 협력 방안을 깊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이미 현대차그룹과 협력 관계다. 삼성SDI는 한 번 충전에 800㎞를 달리게 하는 전고체 배터리(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보유했다.

단기간에 전기차 외연을 크게 넓히려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배터리 수급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경쟁사와 달리 자체 배터리 공장이나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세우지 않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경쟁에서 앞서려면 고품질 배터리 수급이 중요하다”며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공급처 다변화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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