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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 한국' 외치는 中 반도체 회사…진짜 삼성 이길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중국 반도체를 읽다 ④ : 韓 반도체 타도 선봉, YMTC

중국 관영언론 CCTV는 시진핑 주석의 YMTC 방문을 계기로 취재기자를 직접 보내 YMTC 공장 현장을 특별보도하는 등 YMTC 띄우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진 YMTC]

중국 관영언론 CCTV는 시진핑 주석의 YMTC 방문을 계기로 취재기자를 직접 보내 YMTC 공장 현장을 특별보도하는 등 YMTC 띄우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진 YMTC]

축지법(縮地法)인가.

YMTC가 생산한다고 밝힌 128단 낸드플래시 모습. [사진 YMTC]

YMTC가 생산한다고 밝힌 128단 낸드플래시 모습. [사진 YMTC]

‘땅을 접어 같은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도술’처럼 중국 반도체 기술이 세계 수준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중국이 밝힌 거다.

데이터 저장 용도로 쓰이는 적층형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가 그렇다고 한다. 전원이 꺼져도 자료가 그대로 남아 데이터의 저장과 삭제가 자유로운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 저장 장치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에 쓰인다.

지난 2018년 4월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시진핑(왼쪽) 국가 주석이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018년 4월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시진핑(왼쪽) 국가 주석이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주인공은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다. YMTC는 지난 4월 128단 낸드플래시인 ‘X2-6070’ 샘플을 공개했다. 지난해 64단 낸드플래시 제품 양산에 성공한 YMTC는 올해 말쯤 128단 제품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16년 설립된 회사가 4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확보했다는 거다.

32단(2018년)→64단(2019년)→128단(2020년 말)?

YMTC의 64단 낸드플래시 웨이퍼.[사진 YMTC]

YMTC의 64단 낸드플래시 웨이퍼.[사진 YMTC]

낸드플래시는 칩 안에 쌓아 올릴 층수가 많을수록 용량이 커지고 활용도가 높아진다. 128단은 현재까지 나온 세계 최고 층수 낸드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양산을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해 6월 양산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중국 말이 사실이면 한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단숨에 약 1년으로 좁혀진 셈이다. YMTC가 32단 양산에 들어간 게 2018년인 걸 생각하면 불과 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급속한 발전, 이유가 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YMTC가 중국 반도체 굴기(崛起·일으켜 세움)의 상징이라서다. 이 회사 전신은 후베이성 우한을 기반으로 한 국유기업 XMC다. 중국 기업 칭화유니그룹이 인수해 2016년 YMTC로 재설립했다. 2015년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 정책과 반도체 1기 펀드(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를 조성했다.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YMTC도 설립됐다. 이후 YMTC는 칭화유니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우한 YMTC공장의 모습.[사진 YMTC]

우한 YMTC공장의 모습.[사진 YMTC]

칭화유니그룹. 칭화대가 지난 1988년 세운 칭화대 과학기술개발총공사가 전신이다. 업계에서는 칭화유니그룹을 중국 정부 산하 공기업으로 본다. YMTC로 향하는 칭화유니그룹 지원은 사실상 중국 정부가 하는 셈이다.

사실상 YMTC는 메모리 반도체 1위 한국, 아니 ‘타도 삼성전자’, ‘타도 SK하이닉스’의 선봉이다.

지난 2018년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양스닝 YMTC 최고경영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 YMTC]

지난 2018년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양스닝 YMTC 최고경영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 YMTC]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YMTC 우한 공장을 방문하고, 이를 계기로 중국 관영 언론에서 YMTC 특별 보도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최고수준? 의심스러운 업계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업계에선 중국 발표를 그대로 믿지 못한다. 여러 이유가 있다. IT 전문매체 테크노드는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율”이라고 강조한다. 수율은 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을 말한다. 수율이 높을수록 시장에 팔 수 있는 물건이 많아져 이익이 커진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의 에이브릴 우 연구원은 테크노드에 ““YMTC는 수율과 제품 안정성 측면에서 다른 주류 메모리 제조업체들보다 뒤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을 개발했다고 선언하는 건 아무 소용 없다. 제품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팔려야 진짜다.

YMTC가 독자개발했다는 3D 낸드플래시 양산 기술인 엑스태킹 구조도.[사진 YMTC]

YMTC가 독자개발했다는 3D 낸드플래시 양산 기술인 엑스태킹 구조도.[사진 YMTC]

반중 기류, 미·중 무역 전쟁도 YMTC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우 연구원은 “YMTC가 겪을 최고 어려움은 제조 장비 조달”이라고 본다. 반도체 제조 장비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우 연구원은 “네덜란드의 더치ASML이나 미국의 LAM리서치에서 만드는 수십억 달러어치 고가 반도체 생산 장비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평소보다 몇 달씩 공급이 밀리고 있다”며 “만일 미국 정부가 해당 장비의 중국 공급을 제재한다면 YMTC엔 큰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7월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한 반도체 공장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지난해 7월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한 반도체 공장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중국의 의지는 굳건하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를 육성,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는 게 지상 목표다. 현재 자급률은 15% 수준에 그치지만, 막대한 투자로 싹수가 보이는 기업에 무제한 지원 중이다.

중국 반도체 자급률. [중앙포토]

중국 반도체 자급률. [중앙포토]

황민성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반도체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선정하고 참여 인력도 국가 사명으로 여기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며 “마치 한국의 초기 반도체 진입 때 보인 열정 같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길을 따라가려 한다. 한국은 반도체 불모지였던 1980년대, 국가지원에 기업의 열정을 더해 전선에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 반도체 기술을 다양한 경로로 벤치마킹했고, 이후 급속 성장해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더구나 낸드플래시는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인 D램보다 기술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중국이 앞으로도 낸드에 집중 투자를 이어갈 확률이 높은 이유다.

핵심은 우수인력이다.

중국 관영언론 CCTV는 시진핑 주석의 YMTC 방문을 계기로 취재기자를 직접 보내 YMTC 공장 현장을 특별보도하는 등 YMTC 띄우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사진 YMTC]

중국 관영언론 CCTV는 시진핑 주석의 YMTC 방문을 계기로 취재기자를 직접 보내 YMTC 공장 현장을 특별보도하는 등 YMTC 띄우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사진 YMTC]

부족한 기술을 메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황민성 연구원은 ”반도체 후발업체는 개발 난도가 높아지고 투자 자금이 커지면서 선도업체 추격이 어렵다”며 “격차를 넘기 위해 경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중앙포토]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중앙포토]

한국 반도체 인력의 중국 유출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한국 인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최근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중국 에스윈에 가려다 여론 비판에 이를 철회한 것이 그 예다. 업계에선 중국이 이외에도 특허 도용이나 자국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을 바탕으로 한 ‘패스트 팔로잉’ 전략을 펼칠 거란 전망도 한다.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자회사인 충남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자회사인 충남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별다른 방법은 없다. 한국이 살길은 기술 초격차 유지뿐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에 160단 이상 7세대 수직구조 낸드(V낸드)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176단 낸드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도 176단 4차원(4D) 낸드를 연구하고 있다.

[자료 : 삼성증권]

[자료 : 삼성증권]

황 연구원은 “한국의 기술 개발이 느려질 경우, 격차는 좁혀지고 한국이 점유율을 잃어갈 수 있다” 며 “원가 차이를 유지 또는 벌려갈 선행 기술 개발이 최우선 과제”라고 조언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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