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한 박원순 속옷 챙기기, 낮잠 깨우기···여비서 임무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0.07.17 00:02

업데이트 2020.07.17 06:56

지면보기

종합 01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측근 인사들이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를 회유·압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씨뿐 아니라 다른 여성 비서들도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해야 한다”는 시장 주변인의 요구에 따라 시장의 속옷 챙기기 등 성희롱·성차별적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 비서 지원단체 추가 의혹 폭로
“박 측근, 여성단체 휩쓸리지 말라며
확실한 증거 없으면 힘들 것 얘기”

피해자, 여성단체 통해 추가 폭로
매일 2회 박원순 혈압 재기도 업무
박 “자기가 재면 높게 나오더라”

옆에서 뛰어야 기록 잘 나온다며
주말마다 새벽 마라톤 동반하라 해

2016년부터 인사이동 요청 묵살
“스캔들 부담” 말에도 조사 안 해

A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지원단체)는 16일 ‘서울시 진상규명조사단 발표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같이 밝혔다. 지원단체는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별정직, 임기제 정무보좌관, 비서관 중 7월 8일 피해자(A씨)의 고소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연락을 취해 온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책임’과 ‘사과’가 느껴진 경우는 극히 일부”라고 비판했다.

회유와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 인사는 “너를 지지한다”면서도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면서도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한 이도 있었다. 한 인사는 “문제가 있었다면 자세하게 밝혀야 한다”고 해놓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며 사실상 A씨를 압박했다고 지원단체는 밝혔다.

관련기사

보도자료에는 연락을 취해 온 이들이 이른바 ‘6층 사람들’로 불리는 박 전 시장의 최측근들이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박 전 시장에 의해 ‘별정직’으로 발탁됐다가 그의 사망 이후 면직된 인사는 총 27명이다.

지원단체 측은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 등 A씨가 비서로 있는 동안 비서실장을 맡았던 4명이 이구동성으로 “사안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박원순 운동 뒤 속옷 챙기기, 낮잠 깨우기 … 여비서 임무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실종 당일인 지난 9일 오전 10시44분 서울 가회동 공관을 나서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고한석 전 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과 면담 후 오전 10시10분 시장 공관을 나서는 모습. 두 사람은 이날 오후 1시39분 마지막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캡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실종 당일인 지난 9일 오전 10시44분 서울 가회동 공관을 나서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고한석 전 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과 면담 후 오전 10시10분 시장 공관을 나서는 모습. 두 사람은 이날 오후 1시39분 마지막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캡처]

지원단체는 “시장실과 비서실은 성희롱 및 성추행이 일상적인 업무환경이었다. 무엇을 몰랐던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몰랐을 리 없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성희롱·성차별 피해 사례를 추가로 폭로됐다. 지원단체는 “시장이 운동을 마치고 오면 비서는 시장의 속옷을 근처에 가져다줘야 했다. 벗어 둔 운동복과 속옷은 비서가 봉투에 담아 시장 집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사무실 내 침실에서 낮잠을 자는 시장을 깨우는 일도 여성 비서가 해야 했다. “(시장이) 여성 비서가 깨워야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인들이 사실상 강권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박 전 시장의 혈압을 재는 업무도 비서가 맡았다. A씨는 당시 “시장 가족이나 의료진이 해야 할 업무”라고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 박 전 시장은 “자기(A씨)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 등 성희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지원단체는 특히 “서울시 비서들의 업무 성격이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었다”며 “일부 서울시 직원들은 결재받기 전 비서에게 ‘시장님 기분이 어때요’라고 물으며 ‘기쁨조’ 역할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시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는 이들이 비서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시장실을 방문한 국회의원 등이 “여기 비서는 얼굴로 뽑나 봐” 등의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여성 비서들은 “시장이 마라톤을 평소 1시간 넘게 뛰는데, 여성 비서가 함께 뛰면 50분 안에 들어온다”는 말과 함께 주말 새벽에도 나오도록 요구받기도 했다.

지원단체는 “피해자는 2016년 1월부터 반기마다(6개월) 인사이동 요청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된 끝에 최근에서야 근무지를 이동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인사이동 요청은 박 전 시장이 직접 거부했다고 한다. 지원단체에 따르면 A씨는 ‘승진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는 박 전 시장의 인사 원칙을 근거로 전보 요청을 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누가 그런 걸 만들었느냐” “비서실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인사이동을 만류하고 승인을 하지 않았다는 게 지원단체의 전언이다.

A씨가 처음 인사이동을 요청했다고 명시된 2016년 1월은 현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시기다. 비서실장은 비서실 업무 총괄책임자로 비서 채용과 직원 인사를 책임진다. A씨의 인사이동 요청이 아랫선에서 묵살되지 않고 보고절차를 제대로 거쳤다면 서 부시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A씨가 시장 비서로 채용됐을 당시 비서실장이었다는 중앙일보 보도(7월 15일자 5면) 직후 “당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어떤 내용도 인지하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A씨 측 증언이 사실이라면 중간에 누군가가 묵살했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는 서 부시장의 말이 사실과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성추행 건이 공식 신고접수되지 않았으니 사안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A씨가 인사이동을 반기마다 요청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서 부시장 등 당시 비서실 직원들이 피해자 보호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원단체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0년 2월 A씨에게 “다시 시장 비서 업무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A씨는 당시 인사담당자에게 “‘성적 스캔들’이라는 시선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사하겠다”고 우회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인사담당자는 문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단체는 이런 정황들을 제시하면서 서울시의 ‘민관 합동조사단’ 구성 방침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원단체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책임 있게 조사·예방하려면 사임하거나 면직된 전 별정직, 임기제 인사들 역시 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민관 합동조사단만으로 이것이 가능한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15일 내놓은 대책만 봐서는 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할 수도 없고, 규명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는 자체조사를 할 게 아니라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경찰청은 서울시청 6층에 있는 증거들에 대해 보전조치를 하고 수사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서울시·민주당·여성가족부 등은 이중적 태도를 멈추고 성폭력 해결과 성폭력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지원단체에 따르면 서울시 내부의 성추행 피해자는 시장 비서들뿐만이 아니었다. 보도자료에는 ▶회식 때마다 노래방 가서 허리 감고 어깨동무하기 ▶술 취한 척 뽀뽀하기 ▶집에 데려다준다며 택시 안에서 일방적으로 뽀뽀하고 추행하기 ▶바닥 짚는 척하며 다리 만지기 등의 피해를 봤다는 제보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지원단체는 “서울시 정규직 직원은 앞으로 공무원 생활에서의 불이익을 우려해, 비정규직 직원은 재계약이나 재고용 등 일신상의 신분 유지 불안을 이유로 신고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허정원·편광현·윤상언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