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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동주택 화재 피난기구 설치 요원한가?

중앙일보

입력

 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 주 ) 디딤돌 대표 한정권

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 주 ) 디딤돌 대표 한정권

지난 4월 8일, 18세·9세 형제가 숨진 울산의 아파트 화재사고를 기억하는가?

이들 형제와 친구 등 3명은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은 뒤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초를 켰다. 형과 친구가 음료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간 사이 불이 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형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후 형은 동생을 구하지도 못하고 거센 불길로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있다 추락해 숨졌다. 식당 운영을 하는 형제의 부모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 사이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그렇게 우리는 미처 꽃을 피우지도 못한 생명들을 하늘로 배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지난 7월 3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3층 아파트에서 역시 안타까운 화재사고가 있었다.  짙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아파트 발코니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고, 불길이 더욱 거세지자 엄마는 아들을 꼭 살려달라며 아이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이 빠르게 몸을 던져 아이를 구조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불길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엄마는 발코니에서 떨어진 아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뒤 8세 딸을 구하기 위해 화염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아파트 발코니(통칭 베란다)에 이들이 안전하게 불 속을 탈출할 수 있는 피난기구가 있었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외양간의 소들은 아직도 가득하다. 이제부터라도 장애인과 노인∙어린이∙임산부 등의 약자를 위한 화재대피 시설을 의무화 해야 한다.

승강식 피난기는 재해약자들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는 피난기구다. 정부는 법령을 정비해서 실질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화재대피 시설을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역시, 조례 및 건축 심의기준에 재해약자를 위한 화재 대피 승강식 피난기를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심의기준이 정비되면 시장에 진출하는 많은 기업들이 생길 것이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안전한 아파트 문화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모범이 되고 있는 현재의 ‘K-방역’에 이은 ‘K-방재’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아파트 화재의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더 이상 화재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한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안전한 아파트를 위해 수많은 시설들이 설치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다고 에어백을 포기하지 않듯이, 건물에 스프링쿨러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피난기구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다수의 건물주와 업자의 경우 가장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제동물이다. 경제동물의 본능에 맡겨 놓으면 우리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 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주)디딤돌 대표 한정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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