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해외에서 입국한 A씨(40대)는 신장장애인(2급)이다. 신장이 망가져 일주에 세 번 반드시 혈액 투석치료를 받아야 한다. 제때 받지 못하면 몸 안에 요독(尿毒)이 쌓여 호흡곤란, 장기손상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입국 전 투석치료 예약 '퇴짜'
한국신장장애인협회 등에 따르면 A씨는 검역과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방역지침에 따라 2주 자가격리 대상이 됐다. A씨는 입국 전에 미리 서울의 한 의료기관 인공신장실에 연락해 자가격리 기간에 투석을 받기로 예약했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A씨는 13일 입원해 14일 투석 치료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이유로 어렵다”고 거부했다. 인공신장실이 병원 당국과 협의하지 않고 예약을 받았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보건소에 문의했다.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A씨는 전화를 수차례 돌린 뒤에야 겨우 서울시내 다른 의료기관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다른 병원선 일반환자와 함께 잡혀
신장장애인은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면역력이 약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그래서 대개 자가격리 신장장애인은 다른 환자 치료가 모두 끝난 뒤 오후 늦게 투석 치료를 받는다. 혹시 모를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A씨 예약이 14일 이른 시간대에 잡혔다. 다른 환자와 섞이는 시간대였다. 병원 직원의 실수였다. 급기야 그 병원에서 투석치료를 거부했다.
그는 “다른 인공신장센터를 찾아보겠다”는 병원 측 말을 듣고 5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A씨는 결국 이날 투석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 지나 이뤄진 투석치료
이후 A씨 사연을 알게 된 신장장애인협회가 서울시·지역 보건소 등에 강하게 항의했다. 그랬더니 15일 당초 입국 전 예약했던 의료기관에서 투석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신장장애인협회 이영정 사무총장은 “A씨 경우 (병원 측 실수로) 예약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붕 뜬 상황이 됐다”며 “하루만 투석을 받지 못해도 체내에 소변 수천cc가 쌓인다. 자가격리 중인 신장장애인이 안심하고 투석을 받을 수 있는 지정병원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때 투석 못해 사망하기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만성신부전 환자 등 신장장애인이 제때 투석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신장장애인은 지난해 말 기준 9만2400여명이다. 이 중 75%가 투석환자고, 나머지는 이식환자다.
지난 3월 경기도 성남에서는 60대 만성신부전 환자의 투석이 이틀 늦어지면서 심정지로 숨졌다. 2월 경북 경산에서 자가격리 기간 중 투석 병원을 찾지 못한 60대가 체내 요독(尿毒) 등이 쌓여 결국 사망했다.
"코로나 감염보다 무섭다"
신장장애인협회가 자가격리(의심환자 포함) 신장장애인이 투석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전국 공공의료기관 11곳에 확인했다. 공공기관인데도 가능한 데를 찾을 수 없었다.
최근 경기도 광명의 한 내과의원 인공신장실에서 투석 치료를 받던 만성신부전증 환자 3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행히 해당 병원이 당분간 다른 질병을 앓는 외래환자를 받지 않고 50여명 자가격리자를 위한 인공신장실을 운영하기로 해 고비를 넘겼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보다 투석 제때 못 받아 죽을까 봐 더 겁난다’고 하소연한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