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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미안하다, 홍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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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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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홍콩 덕 많이 봤다. 중·고교 시절엔 홍콩 무술영화가 서양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을 줄여줬다.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동양 무예에 극기 정신을 더하면 덩치가 산만 한 서양인도 단박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믿음은 중국 무술 고수가 서양 격투기 선수한테 맞아 단 몇 초 만에 실신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최근 무참하게 깨졌는데, 적어도 지난 30여 년간 두꺼비 같은 서양인 손을 잡는 순간 지나치게 주눅 들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촛불혁명’ 찬양한 홍콩인들이여 #한국 정부와 언론에 큰 기대 말라 #우리가 지금 그럴 형편이 아니다

20대 초에 본 ‘홍콩 누아르’ 영화들은 동양인도 제임스 본드나 장고처럼 멋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줬다. 그 시절 한국 청년들은 주윤발·장국영·유덕화에게 열광했다. 우정과 의리를 귀하게 여긴다는, 자기 위안적 요소가 다분한 줄거리와 ‘간지나는’ 동양 배우들의 등장은 어쩌면 아시아인이 여러모로 더 뛰어난 종족일지 모른다는 우월감까지 안겼다.

실질적 덕을 본 것은 1990년대 초 영국에서 유학할 때였다. 크게 다르지 않은 외양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가까운 유전자(DNA) 때문인지 홍콩 출신 학생들과 쉽게 친해졌다. 70, 80년대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 교육을 투철하게 받은 나는 그들에게 영국 식민지 역사를 하루빨리 끝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영국과 중국이 홍콩 반환 협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고 홍콩인이다” “조상이 같다고 해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머리에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과거의 역사’ 보다(또는 만큼이나) ‘현재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민족 단결, 민족 자주라는 구호가 개인의 실존을 지배하는 도식적 절대선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덕을 본 게 더 있다. 기자가 된 뒤 실물로 대면한 홍콩은 한국말에 왜 ‘홍콩 간다’는 관용구가 있는지를 깨닫게 했다. 주윤발이 ‘영웅본색’에서 마지막 거사를 앞두고 칭찬했던 홍콩의 야경은 진정 절경이었고, 서양과 동양이 절묘하게 융합된 문화는 신세계였다. 그 뒤에 가끔 가 본 홍콩은 영어에 서툰 호텔 벨보이가 등장할 정도로 ‘중국화’가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동도서기’의 매력적 컬래버레이션을 만끽하게 해줬다. 도심 골목에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상인의 근면함이, 스탠리 해안에는 유럽 항구도시의 정취가 있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이념·체제 경쟁을 초월한 역사의 끝’과 토머스 프리드먼이 얘기한 ‘평평해진 세계’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이런 홍콩은 사라질지 모른다. 그곳이 누려 온 개방성과 다원성은 중국의 권위주의·국가주의 체제에 짓눌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머지않아 빅토리아항이나 퀸즈웨이 같은 곳의 이름은 식민 잔재 논란에 휘말릴 듯하고, 중국 정부를 겨냥해 비판적 발언을 한 한국인이 홍콩에서 갑자기 체포될 수도 있다. 지난주 빅토리아항 앞에 ‘賀國安立法’(홍콩보안법 시행을 축하한다)이라는 다섯 글자를 크게 써 세워놓은 바지선이 놓였다. 이미 풍경이 바뀌었다.

홍콩 민주화 시위대는 한국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부르고 2016년 겨울의 ‘촛불혁명’을 찬양했지만 한국 정부는 말이 없다. 그들이 착각했다. 촛불시위가 민주·정의·인권의 가치를 지향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 정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촛불 정신이 ‘하이재킹’됐다고 보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한국 언론도 중국 정부 비판에 소극적이다. 동료 논설위원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다른 나라에 뭐라고 할 형편인가?” 집권당 대표가 정당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XX자식”이라고 욕하는 나라의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강대국 중국 옆에서 살아갈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미안하다, 홍콩.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