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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병율의 퍼스펙티브

디지털 의료체계 구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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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코로나 시대 디지털 의료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선별 진료소에서 원격 로봇 진료를 하는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연합뉴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선별 진료소에서 원격 로봇 진료를 하는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보건의료체계에 가져온 구조적 변화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디지털 의료(Digital Medicine) 가속화를 꼽을 수 있다. 전통적 의료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을 중심으로 의료기관과 민간·공공 의료 조직 등을 통해 진단·예방·회복과 치료 서비스를 직접 제공했다. 반면 디지털 의료는 좁은 의미에서는 온라인 플랫폼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건강 관리의 전반적 활동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디지털 건강 관리 데이터를 활용한 모든 보건의료 분야 활동을 말한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 감염과 재유행 따른 보건의료 공백 언제든 현실화 #정부는 디지털 의료 혁신과 규제 완화 정책에 힘을 싣고 #환자·의료인 소통 약화 등 부작용 최소화 방안 마련해야

이러한 디지털 의료의 적용 범위가 코로나19 상황을 계기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의료 적용을 통해 한국도 K방역으로 불리는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팬데믹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한 디지털 의료

한국 정부는 국민 일상 행동을 제한하는 엄격한 봉쇄 조치를 하지 않고서도 발생 20일 만에 코로나19 상승 곡선을 평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이면에는 정부가 취한 정확성과 투명성에 기초한 정책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자가 진단과 건강 상태 모니터링, 관련 정보의 실시간 제공, 의료기관·의료인과의 비대면 진료 확대 등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예방·추적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의료의 기술적 역량 덕분이다.

디지털 의료 필요성과 장점에 대해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디지털 의료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보건의료 패러다임을 구축해 보건의료 전달 체계를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2월 24일부터 허용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에 따라 시행 초기부터 관련 비용 청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 3월 31일~4월 6일 한 주에만 5만1000건에 달했다.

전화 상담·처방 허용과 함께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전화 상담·처방을 한 경우 진찰료 외에 전화 상담 관리료(진찰료의 30% 수준)를 추가로 적용하는 방안을 도입해 전화 상담·처방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추가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보건의료 분야에서 디지털 의료 적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디지털 의료 적용을 위한 혁신과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따라서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비대면 보건의료서비스 활성화와 디지털 의료 진흥 정책이 앞으로도 가속할 전망이다.

개인 생명과 안전, 정보 보호 대책 필요

러시아 모스크바 원격진료센터에서 화상 전화를 통해 코로나19 환자와 상담하는 의료진.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 원격진료센터에서 화상 전화를 통해 코로나19 환자와 상담하는 의료진. [타스=연합뉴스]

디지털 의료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활용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코로나19 예방·감시 체계 운영에서 일부 나타났던 개인 신상과 건강 정보의 노출 문제와 다양한 디지털 건강 관리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개별 시스템 오류 문제는 아무리 작다 해도 개인 생명과 안전, 정보 보호 차원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일부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환자와 의료인 간 소통을 약화해 전화나 비대면으로 환자의 상태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적절한 진료 시기를 놓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또 실질적 환자 관리와 의료기관 간 협력을 위해 디지털 기술 적용보다 의료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형평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계 단체인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5월 6일 “전화 상담 고착화와 원격 진료 제도화는 1차 의료체계 붕괴를 부추겨 코로나19 2차 유행 극복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맞는 보건의료

중국 최대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인 핑안굿닥터의 의료상담센터. 11만4000여명의 의료진이 온라인 예약·상담·진료·치료법을 제공한다. [타스=연합뉴스]

중국 최대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인 핑안굿닥터의 의료상담센터. 11만4000여명의 의료진이 온라인 예약·상담·진료·치료법을 제공한다. [타스=연합뉴스]

디지털 의료에 대한 입장 차이에도 정부와 의료계, 관련 단체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신종 감염병 위기 속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보건의료 분야 발전이 필요하며 디지털 의료가 급속히 확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 감염과 재유행에 따른 보건의료 공백 문제가 언제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의료기관의 원활한 운영과 환자·의료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디지털 의료 체계의 구축과 실현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다양한 중증질환을 포함해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 상황을 의료인이 매 순간 대면해 처치하기에는 의료인력과 시간·공간적 제약이 상당하다. 따라서 환자의 상태를 지속해서 파악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며 위험 상황에 대한 징후를 의료인에게 알려주기 위한 디지털 기술의 적용과, 환자와 의료인 간 감염을 막기 위한 비대면 진료의 확대는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한다.

디지털 의료로 차원 높은 건강 관리 가능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비대면 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의료에 기반을 둔 방역 체계 구축으로 K방역 체계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국제적으로 코로나 관리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화 처방·상담 등 다양한 비대면 진료가 진행되고 있고, 비대면 진료서비스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음에도 우려할 만한 의료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이는 한국 의료인의 우수한 역량과 실력을 보여준다. 또 디지털 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디지털 의료가 성과를 보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구축된 한국의 스마트 검역 체계는 질병관리본부를 주축으로 국립검역소·외교부·법무부 등 관계 부처가 유기적으로 해외 입국자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대규모 해외 유입 감염을 차단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또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염자 발병 소재지, 이동 수단, 방문 의료기관과 발병 사례 등 정보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중에 공개한 것은 추가적인 N차 감염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신종 감염병에 따른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극단적 제한 조치 없이도 일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 의료를 통한 보건의료 환경은 환자와 의료인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환경에서 대규모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디지털 의료가 지속해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구현된다면 코로나19 감염을 통제해 상황을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의료는 보건의료서비스 제공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진화된 디지털 기술이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 관리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