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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 사태와 공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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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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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모’로 잡힌 직원만 1600명이다. 기름을 댄 정유사와 비행기 리스사, 공항까지 모두 돈을 떼일 수 있다. 무려 1700억원이 필요하다.

청산 위기에 몰린 이스타항공의 현실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실질적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스타를 인수하기로 하고 결정을 미루는 제주항공과 모기업 애경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을 역추적해보면, 이스타 사태엔 이 의원의 욕심에 조력한 ‘공범들’의 죄가 작지 않다.

이 의원이 2007년 낸 『텐베거』는 ‘10배 이상의 성취를 거두는 전략’을 알려준다는 책이다. 그는 자신의 경영 멘토로 워렌 버핏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꼽는다. 책 내용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실하다.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밝힌 투자 성공 사례는 현대증권 재직 시절 근로자주식저축 계좌를 개설해 넣은 1300만원을 2년 만에 2억원으로 불렸다는 주장뿐이다. ‘지당하신’ 투자 격언이 나열되고, 익숙한 해외 경영 사례가 소개된다. 이 책에서 그는 “2020년엔 매출액 10조에 순이익 1조를 달성하겠다”고도 다짐한다.

노트북을 열며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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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어설픈 책엔 명사 7명이 추천사를 썼다. 이 의원과 지연 등으로 연결된 전 경제부총리와 당시 서울대 경영대학장, 인터넷 신문사 대표, 당시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찬사를 보탰다. 이들은 이 의원이 경제에 밝은 지역 명사로 부상해 국회의원이 되고 관직에 오르는 발판 노릇을 했다.

이 의원이 이스타항공의 모태인 에어프로젠KIC를 인수한 과정은 의문투성이다. 증권사를 그만둔 그는 2001년 복수의 사모펀드(베스트투자자문 등)를 결성해 기업사냥에 나선다. 공업용 금속 기계 제작을 주로 하는 상장사인 KIC 지분을 최대주주와 협의 없이 사들인다. 대주주가 되자 직접 경영에 나선다. 이후 KIC 사업 목적에 ‘창업투자업 관련 사업 및 투자’ ‘재무컨설팅 사업’ ‘부동산 임대업’을 추가해 회사를 담보로 다른 사업(삼양감속기·부산 태화백화점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거나 창업해 몸집을 불린다. 이스타는 이런 ‘기업 돌려막기’ 정점에서 탄생했다.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이나 재무 임원, 이사진이 각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008년 출범한 이스타는 2011년 말 이미 자본 전액 잠식 상태에 빠졌지만, 방치됐다. 2017년에도 취약한 재무구조가 문제가 돼 퇴출 논의가 일었지만, 결국엔 살아남았다. 국토교통부에서 누가 힘을 썼을 것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오판에 따른 결정이건 모종의 커넥션이 작동한 결과이건, 이를 가능케 한 이들 또한 이스타의 추락에 책임이 있다.

전영선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