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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로또’ 받자, 할머니도 대학생도 2시간 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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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5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18.27포인트 오른 2201.88에 마감했다. 코스피가 2200선을 넘어선 것은 지난 2월 19일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15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18.27포인트 오른 2201.88에 마감했다. 코스피가 2200선을 넘어선 것은 지난 2월 19일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후 신영증권 서울 명동점. 체외진단 의료기기 개발업체 제놀루션의 공모주 청약 첫날을 맞아 신규 계좌를 만들려는 고객이 몰렸다. 증권 계좌를 처음 만든다는 대학생부터 70대 고령자까지 한꺼번에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 상장 주관사를 맡은 신영증권의 계좌가 있어야 제놀루션의 공모주 청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8~9일 실시한 기관 투자가의 수요예측 경쟁률이 1161대 1을 기록하면서 ‘동학개미’ 투자자들도 몰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한 창구 직원은 “점심도 못 먹고 오전 8시부터 계좌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놀루션’ 청약일 증권사 북새통 #SK바이오팜 공모주 대박 학습효과 #동학개미들 몰려 툭하면 1000대 1 #직원들 “점심도 못 먹고 종일 응대” #공모주 열풍, 대출 한달새 3조 급증

고객 중에는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가족 신분증 네 개를 들고 찾아온 70대 할머니도 있었다. 가족 이름의 휴면 계좌를 되살려 공모주 청약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 김모(24)씨는 “대학 선배가 SK바이오팜에 청약한 뒤 상장 이틀 만에 200만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모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 주도 못 건질지도 모르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경험 삼아 넣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재테크 블로그에는 “신영증권 대치점에서 계좌를 만들기 위해 2시간 기다렸다”는 글도 올라왔다.

15일 제놀루션의 공모주 청약을 마감한 결과 평균 경쟁률은 895대 1을 기록했다. 신영증권의 우대고객을 제외한 일반 고객의 경쟁률만 따지면 1118대 1이었다. 청약 증거금으로는 1조원이 몰렸다.

최근 공모주 청약 경쟁률과 증거금

최근 공모주 청약 경쟁률과 증거금

지난 14일 공모주 청약을 마감한 티에스아이(2차전지 장비 제조업체)의 경쟁률은 1621대 1이었다. 국내 증시의 공모주 청약에서 사상 두 번째로 높았다. 공모가(1만원)를 고려하면 증거금으로 1억원(증거금률 50%)을 맡겨도 12주 정도만 배정받는다는 얘기다. 티에스아이의 공모주 청약에 몰린 자금은 2조9900억원이었다. 지난 8~9일 공모주 청약을 실시한 에이프로(2차전지 장비 제조업체)도 158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선 최근 잇따라 경쟁률 1000대 1을 넘나드는 ‘공모주 열풍’이 SK바이오팜의 ‘학습 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SK바이오팜의 공모주로 재미를 본 투자자들이 다른 공모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관측이다. 지난달 23~24일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청약에는 31조원가량의 자금이 몰렸다. SK바이오팜은 코스피 상장 나흘째인 지난 7일 장중 한때 26만9500원까지 올랐다. 만일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청약(공모가 4만9000원)에서 10주를 배정받았다면 최대 220만원을 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소중 SK증권 연구원은 “SK바이오팜의 청약 증거금에서 투자자들에게 환불된 약 30조원 중 상당 부분이 다시 공모주 투자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0.5%까지 떨어진 것도 초과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을 공모주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신용대출과 마이너스대출 등을 합친 기타대출은 한 달 전보다 3조1000억원 늘었다. 지난 5월 증가폭(1조1000억원)의 세 배 가까운 수준이다. 한은은 “공모주 청약 관련 자금수요 등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공모주 청약을 거쳐 상장한 종목의 주가 흐름이 대체로 양호한 것도 공모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반등에 성공한 덕분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규 상장한 17개 종목 중 14개는 15일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웃돌았다. 이 중 주가가 공모가의 두 배 이상인 종목은 세 개(SK바이오팜·엘이티·레몬)였다. 소마젠·위더스제약 등 여섯 개 종목은 15일 주가가 공모가보다 50% 이상 올랐다.

하지만 공모주 청약이 항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은 아니다. 젠큐릭스와 엔피디·켄코아에로스페이스 등 세 개 종목은 15일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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