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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절친이 코로나로 숨졌다. 그래도 기적을 노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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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이탈리아에서 데뷔한 후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소프라노 조수미. 코로나 희생자 추모 노래를 불렀다. [중앙포토]

1986년 이탈리아에서 데뷔한 후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소프라노 조수미. 코로나 희생자 추모 노래를 불렀다. [중앙포토]

“내 절친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놀라고 슬프고 힘들었다. 그런 다음 가만히 이 상황을 생각해봤다. 친구는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15일 전화 통화에서 이탈리아 친구의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는 올해로 50세가 된 여성 화가였다. 코로나19 전용 병원에 한달을 머물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조수미의 슬픔은 곧 음악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언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의 이런 마음을 담은 노래  ‘삶은 기적(Life Is a Miracle)’이 이날 정오 국내에 공개됐다. 이탈리아에서 10일 나왔던 이 곡은 코로나19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친구의 죽음이 이 노래의 출발점이었다. 조수미는 “망연자실해 있다가 그 친구의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들은 이탈리아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페데리코 파치오티(33). 조수미가 2018년 부른 평창동계패럴림픽 공식 주제가 작곡자이기도 하다. 둘은 십수년 전 이탈리아에서 알게됐고, 그러면서 조수미는 파치오티의 엄마와 친구가 됐다. 조수미는 “어머니를 기리는 곡을 써달라고 했을 때 파치오티는 너무 힘들어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힘을 내보자고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써보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조수미와 파치오티가 함께 부르는 이탈리아어·영어 가사는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 기적에 대한 희망으로 흘러간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건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거야.’ ‘모든 것이 다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인생이 가장 큰 기적이기 때문이야.’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함께하는 음악은 부드럽지만 확신에 차있다.

조수미는 “이탈리아의 강제 격리가 엄격했던 5월에 사흘동안 모든 연주자가 각자의 공간을 구해 녹음했다”고 전했다. 조수미는 집 근처의 스튜디오를 빌려 혼자 노래를 불렀고 곡을 쓴 파치오티도 테너로 자신의 공간에서 노래를 녹음했다. 피아니스트 지오반니 알레비는 네덜란드에서 연주를 녹음했고 나중에 모든 음원이 합쳐졌다.

노래 제작에 참여한 모든 연주자와 스태프는 출연료 등의 대가를 받지 않았다. 조수미는 “모든 사람이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흔쾌히 도왔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쓴 카메라와 장비, 촬영용 드론까지 모두 기부 형식으로 제공됐다”고 했다. 음원의 이탈리아 내 수익금은 과학ㆍ의료를 연구하는 베로네시 재단에, 한국 수익금은 이화여대 의료원에 기부된다.

조수미는 “특별히 여성과 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이화여대 의료원을 기부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작곡가에서 음악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 없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음악을 들으며 어머니와 여성들이 특별히 많이 위로받기를 바란다.” 이번 음악의 뮤직비디오에는 처음부터 나오던 하얀 나비가 빨갛게 변하는 장면이 있다. 조수미는 “어머니가 우리 삶의 심장과도 같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조수미는 절망적인 시대에 마음의 치유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친구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것을 봤다. 죽음은 우리와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노래를 들으며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조수미는 “1986년 데뷔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무대를 떠났던 적이 없었다”며 “하지만 음악은 우리 삶에서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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