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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세계 성인 팬 100만명…레고, 아이 완구 맞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15) 

제가 칼럼에서 줄곧 강조한 것처럼 레고 브릭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가 사랑하는 완구입니다. 하지만 초창기 레고는 어린이를 주 타깃으로 하는 장난감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어린이가 혼자 조립하기 난해한 레고 테크닉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성인 레고 팬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레고사는 더욱 적극적으로 성인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성인 레고 팬을 ‘AFOL(Adult Fan of Lego)’이라고 합니다. 레고사가 추정한 전 세계 AFOL의 수는 100만 명이 넘습니다. 앞서 소개한 국내외 브릭 아티스트는 대부분 AFOL로 활동했죠. 이 AFOL은 연간 레고 판매량의 20% 정도를 책임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른이 자신의 놀이를 위해 이만큼이나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인 레고 팬은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아이디어도 공유하는 만남의 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인끼리 모여 가정집에서 소규모로 열리던 행사가 국제적인 컨벤션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적· 질적으로 급성장한 대표적인 브릭 컨벤션 행사에 대해 두 회의 칼럼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최초의 레고 팬 모임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약 스무 명의 레고 팬이 참석한 아주 작은 규모의 컨벤션이었죠. 사실 컨벤션이라기보다는 동호회 모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각자의 작품을 소개하거나 서로 필요한 부품을 교환하기도 했고, 공동의 프로젝트로 작품을 만들어 조립 기술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브릭 컨벤션과 똑같은 형태죠.

90년대 말 이러한 작은 컨벤션이 북미와 유럽의 각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하며 더 큰 규모의 행사로 발전했습니다. 그중 가장 처음 열린 컨벤션이 2000년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제1회 ‘브릭페스트’입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일반인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온라인에서만 만난 친구를 직접 만나기도 했죠. 레고사 임직원도 참여해 레고 관련 세미나도 개최하였습니다. ‘브릭페스트’는 미국 동부지역의 주요한 레고 팬 행사로 자리매김했고, 서부 지역 행사로는 2002년부터 매년 시애틀에서 열리는 ‘브릭콘’이 있습니다.

브릭페스트 로고와 조지메이슨 대학교 강의실에서 열린 제 1회 브릭페스트. [사진 브릭페스트 홈페이지]

브릭페스트 로고와 조지메이슨 대학교 강의실에서 열린 제 1회 브릭페스트. [사진 브릭페스트 홈페이지]

2000년대 말까지 미국 4대 레고 컨벤션이라고 불리던 ‘브릭페스트’, ‘브릭콘’, ‘브릭월드’, ‘브릭페어’는 수백 명의 참가자와 수만 명의 일반 관람객을 끌어모았습니다. 브릭페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행사는 현재까지도 북미를 대표하는 브릭 컨벤션으로 계속해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고, 이러한 컨벤션은 빠른 속도로 다른 나라에까지 퍼져 그 지역의 대표 커뮤니티의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에는 포르투갈 레고 유저 그룹(PLUG)의 주최로 2013년부터 ‘오에이라스 브린카(Oeiras Brincka)’라는 이름의 레고 팬 이벤트가 열리고 있고, 일본은 2017년부터 ‘재팬 브릭페스트 (Japan Brickfest)’가 열리고 있습니다. ‘재팬 브릭페스트’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키덜트의 나라답게 벌써 국제적으로 큰 규모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 행사를 취소하거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라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부터 ‘브릭코리아컨벤션’을 개최해오고 있죠. ‘브릭코리아컨벤션’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브릭 컨벤션 중에서도 가장 글로벌한 형태를 가진 행사가 있는데요, 바로 레고 본사가 있는 덴마크의 작은 도시 스케르벡에서 열리는 ‘스케르벡 팬 위켄드(Skærbæk Fan Weekend)’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일본의 ‘재팬 브릭페스트’와 포르투갈의 ‘오에이라스 브린카’ 그리고 이 ‘스케르백 팬 위켄드’가 유일하게 레고그룹에서 인정하는 공식 팬 이벤트입니다.

‘레고 컨벤션은 AFOL들이 직접 개최하도록 두고 관여하지 않는다’가 레고사의 방침이기 때문에 공식 팬 이벤트라고 해도 레고사가 직접 개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레고사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레고 본사가 위치한 빌룬트도 덴마크 외곽의 작은 도시인데 스케르벡은 거기서도 남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하는 시골입니다. ‘스케르백 팬 위켄드’는 그곳의 지역 종합 체육센터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였는데, 2018년에는 전 세계 26개국에서 참여했을 정도로 인기가 커졌습니다. 순수하게 레고 팬들에 의해 열리는 컨벤션이지만 아무래도 레고의 성지인 덴마크에서 열리기도 하고, 레고 하우스와 연계하는 행사를 하거나 레고그룹 임직원과 주요 디자이너들, 그리고 현재 레고사의 회장인 켈 크리스티얀센까지 구경을 오는 행사라는 메리트 때문인듯합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브릭 아티스트들이 먼 길을 날아와서 참석하고, 실제로 아마추어 브릭 아티스트와 레고사가 연계되어 제품 출시까지 하기도 한다네요. 이 때문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다른 로컬 행사와는 다르게 레고 팬 컨벤션의 구심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 행사장 전경. [사진 브릭캠퍼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 행사장 전경. [사진 브릭캠퍼스]

이벤트 중 하나인 '작품 빨리 만들기 (Speed Building)'에 열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브릭캠퍼스]

이벤트 중 하나인 '작품 빨리 만들기 (Speed Building)'에 열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브릭캠퍼스]

컨벤션의 형태는 어느 나라나 비슷합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일정 규격의 테이블에 참가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죠. 대부분의 로컬 컨벤션은 참가비조의 테이블 임대료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스케르벡 팬 위켄드’에서는 참가비는 받지 않고 전시를 보러 온 일반 관객으로부터 소정의 입장료를 받습니다. 다만, 레고사가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합니다.

보통은 제품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브릭 박스’라는 이름으로 큰 상자에 다양한 레고 브릭 부품을 랜덤으로 담아두고 참가자에게 싸게 구매할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또 행사가 끝난 후에 레고 직원 전용 샵에서 할인가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기도 하죠. 때로는 경매 프로그램에 쓰일 물건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에 참석한 레고사의 현재 회장 켈 크리스티얀센. [사진 브릭캠퍼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에 참석한 레고사의 현재 회장 켈 크리스티얀센. [사진 브릭캠퍼스]

레고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또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브릭 컨벤션 행사는 매우 많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AFOL는 경제적 여건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행사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죠. 국내 AFOL도 개인적으로나 동호회 차원으로나 이러한 행사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브릭 컨벤션들은 규격(1X8) 브릭에 해당 컨벤션 로고를 새겨 넣어 모든 참가자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이 기념 브릭을 모으는 것이 AFOL 사이에서는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아래 사진은 한 참가자가 작품과 함께 자신이 그동안 다녔던 브릭 컨벤션의 기념 브릭을 전시해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브릭코리아컨벤션’에서도 이와 같은 기념 브릭을 나누어 준답니다.

브릭 컨벤션에 참석하면 기념 브릭을 주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이 모은 기념 브릭을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사진 브릭캠퍼스]

브릭 컨벤션에 참석하면 기념 브릭을 주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이 모은 기념 브릭을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사진 브릭캠퍼스]

‘스케르벡 팬 위켄드’는 매년 9월 말 2박 3일의 일정으로 열립니다. 참가자는 항공비, 숙박비 등을 모두 직접 부담하면서 행사에 참여하죠. 컨벤션이 열리는 체육관 옆에 있는 방갈로 형태의 숙소에 머무르면서 낮에는 행사에 참석하고 마지막 날에는 함께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교류를 합니다. 컨벤션에 참석한 브릭 아티스트가 얻어 가는 것은 물질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1년에 한 번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다는 개념으로 그저 즐기는 것이죠.

행사 참가자들이 머무는 숙소. [사진 브릭캠퍼스]

행사 참가자들이 머무는 숙소. [사진 브릭캠퍼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 바비큐 파티. [사진 브릭캠퍼스]

2018년 스케르벡 팬 위켄드 바비큐 파티. [사진 브릭캠퍼스]

마니아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 행사를 개최하고 운영하면서 즐기고 또 이것을 국제적인 규모의 컨벤션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은 브릭이 유일합니다. 해외 컨벤션에 참석해 브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죠. 상상력과 창의력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에는 브릭이라는 공통된 언어만 있으면 되니까요. 이것이 바로 브릭의 가장 놀라운 점이 아닐까요?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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