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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패 반복 끝에 탄생한 포스트잇에서 배우는 삶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3)

1990년대 중반 나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내 일생에 중대 전환점을 준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포스트잇의 개발자 아트 플라이다. 은퇴 후 이웃에 대한 봉사와 후손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제로 강연 등을 하고 있던 아트 플라이는 나에게 포스트잇의 개발과정과 함께 내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얘기를 들려줬다.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성공이 이뤄진다. 포스트잇도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수 있다. [사진 pexels]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성공이 이뤄진다. 포스트잇도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수 있다. [사진 pexels]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신화에 들떠 정작 중요한 실패의 경험은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성공이 이뤄지는 데 말입니다. 포스트잇도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죠. 실패를 중요시하라는 것은 과정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더 큰 성공으로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과정을 소홀히 하게 하는 목표 만능적 태도를 쌓게 해 더 큰, 또 다른 성공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게 하죠”

세계적 기업 3M이 실패의 성공학을 중요시하는 회사라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패를 장려하는 회사? 어떤 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얘기고, 목표달성만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우리네 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토에 충격을 받을 얘기다. 오직 성공만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목표 만능주의라는 현상을 낳는다.

과정중시형 가치관과는 배치되는 목표지향적 가치관은 우리나라가 빨리빨리 문화의 정착을 통해 국제경쟁에서 빠른 시간 안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갖게 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빠른 목표달성을 추구하는 풍토는 새로운 발전과 더 큰 성공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실패사례)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게 하며, 궁극적 경쟁에서 밀리게 만든다. 만일 3M의 포스트잇도 강력접착제라는 목표를 위해 제대로 붙지 않는 실패의 반복이라는 과정을 도외시했다면 결코 태어나지 못할 일이었다. 포스트잇은 실패한 동료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탄생한 걸작이다. 만일 그 회사가 목표지향적 풍토였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공유하며 함께 하는 풍토가 결국은 더 큰 성공을 낳게 했다.

우리는 이제껏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왔다. 이는 마치 행운이라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 클로버를 발로 밟으며 무시한다는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 pixabay]

우리는 이제껏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왔다. 이는 마치 행운이라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 클로버를 발로 밟으며 무시한다는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 pixabay]

아트 플라이의 말에서 개인적으로 내가 얻은 교훈은 ‘성공한 삶만 쫓다가는 실패한 삶이 된다’였다. 우리네 삶에서는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이 소위 평안하고 더 풍요로운 노후를 위해서는 젊은 시절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자위하며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껏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왔다. 그는 마치 ‘행운이라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 클로버를 발로 밟으며 무시한다’는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다음의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행운을 위해 오늘의 함께 누려가는 행복, 과정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마치 목표를 위해 과정은 어떠해도 좋다며 무시하는 삶 말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느끼며 삶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닌가, 특히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자세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존경하던 회사 대표께서 은퇴 후 2년 뒤 세상을 떠나신 기억은 과정 중시의 삶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늘 은퇴 후엔 여유를 갖고 즐기며 살 것이라고 말씀하던 분이었다. 목표지향적 삶에 경도되다 보면 필연코 자기만을 위한 삶이 되고 그런 삶은 경쟁과 투쟁적 삶을 영위하게 한다. 소위 함께 하는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내게 목표지향적 삶과 과정중시형 삶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함께’의 차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여기서 ‘함께’는 여럿이 함께라는 물리적 의미는 물론 과정, 가치관의 공유, 삶의 균형 등 상징적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나만 성공하면 된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로 흐르게 되는 목표지향형 태도는 ‘함께’라는 의미와는 상반된 방향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목표지향형 삶이 다 나쁘다고 단언하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도 가져본다. 만일, 인생 2막인 직장생활에서 목표지향적 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네의 눈부신 발전이 가능했을까, 또는 내 삶의 인생후반부인 오늘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하면 목표지향적 자세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그룹의 총수는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내 손가락 끝만 보더라“라며 한탄했다. [사진 pixabay]

어느 그룹의 총수는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내 손가락 끝만 보더라“라며 한탄했다. [사진 pixabay]

요지는 은퇴 후 인생후반부를 살면서도 인생 2막에 습관화돼 온 목표지향적 태도를 고집하며 더 나은 내일, 더 행복한 내 생활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갈등하고 번뇌하는 삶이 맞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면서 자식에게 더 물려줘야 한다며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좋은 직업(경제적 이유)을 가져야 한다는 고민과 갈등을 겪는 이웃을 보면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된다. 만일 인생후반부, 목표지향적 삶과 과정중시형 삶 사이에서 고민이 된다면 적어도 목표를 과정중시로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이제껏 보이지 않는 미래의 성공을 목표로 했었다면 이제는 보이는 매일매일의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된다. 과정중시형 태도는 실패를 많이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실패 또한 두려워하지 말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성공(행복)의 가능성을 높이라는 아트플라이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실패의 성공학을 말할 때 어느 그룹의 총수께서 한탄한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내 손가락 끝만 보더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실패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과정상 있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자산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목표는 단 하나로 설명 가능하지만 과정은 복합적이다. 과정에는 하나가 아니라 ‘함께’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과정을 중시하는 삶, 함께 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 잘살고 행복하겠다는 욕심이 서린 목표지향적 태도를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인생후반부의 삶이 ‘함께’라는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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