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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정근의 이코노믹스

일본처럼 안 되려면 신속한 구조조정 이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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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기간산업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한국경제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치열한 국제경쟁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해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인 주 52시간 도입, 공공부문의 일률적 정규직화 같은 반기업·친노동 흐름이 이어졌다. 이 여파로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경기 하락세가 지속하면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기업 정책에 코로나까지 겹쳐 #주력 기간산업마저 줄줄이 부실 #부도·실업 차단 위해 지원하되 #좀비기업 골라내야 신속한 회복

최근 기업들의 경영 악화는 매출 감소와 재고 증가로 표면화하고 있다. 그 여파는 한국경제를 견인해 온 자동차·전자·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685개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재고자산은 2017년 80조원에서 2019년 100조원으로 2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04조원에서 56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금융감독원은 부실징후가 커져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이 2018년 190개에서 2019년 210개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범위를 넓혀서 2만764개 외부감사 대상기업을 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이 2017년 5442개에서 2019년 6817개로 25% 증가했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도 같은 기간 동안 2318개에서 3011개로 30% 증가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위기가 가세해 글로벌 경제 봉쇄를 촉발했다. 중국 등 해외생산 중간재와 부품 공급이 끊기고 소비·투자·수출이 급감해 공급과 수요 위기가 동시에 닥치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한국경제를 덮쳤다. 이대로 가면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이돼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이미 2금융권의 부실여신 비율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 부실이 현실화하면 대량실업 사태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고용은 이미 5월부터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실업자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고 사실상 실업상태인 일시휴직, 쉬었음, 취업준비까지 합하면 실제 실업자는 55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수입이 적어서 불완전 취업자로 간주할 수 있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임시 및 일용근로자를 합하면 상황은 더 나쁘다.

일본, 부실기업 지원하다 부채 수렁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급기야 정부는 2·28 종합대책에서부터 4·22 비상경제회의 대책까지 총 지원액 282조원에 이르는 방대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15% 수준으로 약 10% 수준을 공급하는 미국보다 크다. 소상공인 지원 46조원, 중소중견기업 지원 74조원, 금융시장안정 74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 고용안정 특별대책 10조원, 소비 진작 36조원, 감염병 의료지원 3조원 등 전방위적으로 재정을 퍼붓고 있다. 기업을 살려 고용을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 고용안정이라는 명목의 일시적 일자리와 소비 진작 명목의 재난지원금에도 재정이 무차별적으로 투입된 결과다. 이렇게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면서 연말에는 재정적자가 1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 지원, 금융시장안정과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은 불가피하게 기업구조조정과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대량 기업부도와 대량 실업이 확대되지 않도록 지원하되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신속한 지원으로 살리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시켜야 한다. 그 대신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옥석도 가려야 한다. 지난 3년간 기업 구조조정을 해왔는데도 다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경쟁력 없는 좀비기업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탓도 있기 때문이다. 재정이 위험수위에 이를 정도로 지출하고 있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좀비기업의 연명에 쓰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좀비기업은 신성장 산업 육성마저 가로막아 자원배분의 비효율성만 높일 뿐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부실기업까지 재정으로 지원해 오다 국가부채가 급증해 마침내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겪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991년만 해도 60%대에 불과했으나 93년 진보 야당 연립정권이 들어서 재정지출을 급속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1997년 처음으로 100%를 기록한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 200%를 넘어서고 2018년 238%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됐다. 일본은 막대한 재정정책을 쏟아붓고도 1992~2011년 20년간 평균 0.6%의 저성장을 지속하는 잃어버린 20년을 기록했다. 일본의 경험은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신속한 지원으로 살리되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시키고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신성장 동력 살려야 한국경제 살아

기간산업

기간산업

결국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기준의 재무상태 판단이 중요하다. 즉 일시적 유동성 위기상태로 판단되는 기업은 만기연장, 일부 면제 등 채무 재조정, 기업구조조정, 추가지원으로 힘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지급불능 상태로 판단되는 기업은 청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소유주·경영진·채권자·노동조합 간에 엄격한 손실분담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고 정부는 지원 후 불개입 원칙을 지키고 전문가에 일임해야 한다. 제너럴모터스(GM)는 이런 방식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해 2009년 다시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한 모범적 구조조정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위기를 겪고 있는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코로나 위기로 일시적으로 기업의 현금흐름이 악화해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쟁력이 있어 코로나 위기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는 회복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순서로는 일차적으로 지난해 개정해 대상 범위가 크게 확대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에 의한 사업재편을 시도해 보고, 그다음에는 인수합병(M&A)시장, 사모펀드(PEF), 기업 인수목적회사(SPAC) 활성화와 기업분할에 의한 구조조정 등 시장기능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에서 논의만 있고 의안으로는 상정이 안 되는 대기업 벤처캐피탈(CVC)을 인가해서 인수합병(M&A)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이나 다름없는 재원이 투입되는 각종 지원프로그램은 대량실업 방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도 안 되는 기업은 부득이 자율협약·워크아웃·법정관리의 수순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이런 기업 구조조정은 선거가 없는 내년 상반기 중에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 재창궐 막아야 기업 부실도 최소화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의 체력을 약화한 최근 3년간 반기업 정책의 근본적인 대전환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의 탄력 적용, 노동 유연성 제고,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이다. 재정 의존도를 줄이고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중국 투자 환경의 악화로 탈중국을 고민하는 기업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는 파격적인 리쇼어링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로 부상하고 있는 배송, 원격의료, 디지털 검진, 로봇 진료, 원격강의, 재택근무, 화상회의, 비대면 핀테크 거래 등 언택트 산업도 육성해야 한다. 감염병 차단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이므로 감염병 차단 정책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만약 몇몇 전문가의 예견처럼 조만간 가을에 다시 코로나가 재창궐하면 대량 기업부도와 대량실업의 대위기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이미 재정은 바닥이 드러났고, 국가채무가 추가로 늘면 재정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한국은행 발권력으로 대량 기업부도와 대량 실업을 방지하기 위한 부실 회사채와 부실어음의 선별적 매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해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거나 낙선 정치인 퇴직 관료의 낙하산 임명은 매우 위험하다. 도덕적 해이의 만연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경제 전체의 비효율이 증가하고 베네수엘라처럼 막대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요컨대 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기업회생 후 유동성 회수를 통해 경제안정이 도모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의 탈정치가 중요하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