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RM의 역할을 기대해

중앙일보

입력 2020.07.14 00:19

업데이트 2020.09.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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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원주 뮤지엄 산,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제주 본태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전국 곳곳에 있는 미술 공간들입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김남준·26)이 다녀간 곳이자 ‘RM 투어’ 혹은 ‘남준 투어’ 코스라는 것입니다.

RM은 바쁜 일정 중 조금이라도 짬이 생기면 미술관을 탐험하기로 유명하죠. 그는 금호미술관에서 12일 폐막한 김보희(68) 작가의 ‘투워즈(Toward)’전, 앞서 5일 막 내린 PKM갤러리의 윤형근(1928~2007)전에도 다녀갔습니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과 제주 본태미술관도 RM의 방문으로 이미 방탄소년단의 팬들에게는 ‘성지’가 된 지 오래입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윤형근 전시를 찾은 RM. [사진 BTS트위터]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윤형근 전시를 찾은 RM. [사진 BTS트위터]

RM은 미술기자 뺨치게 베니스나 뉴욕, 서울뿐만 아니라 국내 지방의 미술관에 출몰하며 발자국을 찍고 있는 거죠. 기자들은 ‘아 좋은데 정말 좋은데’ 하면서도 다 설명하지 못했거나 설령 열심히 기사를 썼더라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가 그를 통해 순식간에 ‘글로벌 문화생활 팁’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RM이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 한 컷을 SNS에 올리면, 눈 밝은 팬에 의해 전시장과 작가 정보가 바로 밝혀지고, 심지어 영어로도 번역돼 전 세계 팬들에게 공유되더군요. 그러면 팬들은 전시장을 찾아 ‘성지 순례 인증샷’을 찍어 포스팅하며 이렇게 씁니다. “오늘도 좋은 그림 보게 해준 준이에게 감사를” “남준이 덕분에 매번 감성 충전”···. RM의 강력한 문화 영향력입니다.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렸기에 가능한 일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팬덤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취향과 안목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일관되게 미술관을 찾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거든요. 일단 관심이 있어야 하고, 미술 작품 보는 일이 즐거워야 하며, 더 큰 재미를 누리기 위해 틈틈이 관련 책도 읽으며 공부도 해야 하니까요.

그럼 그의 취향은 어떨까요. 현재까지는 김환기, 윤형근, 이우환, 김종학 등 일단 내로라하는 작가들 전시를 챙겨보며 한국 근현대 미술을 섭렵하고 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또 어디가 될지 궁금합니다. 최근 한 미술계 인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RM이 언젠가는 그 자신의 안목으로 젊은 작가들과 덜 알려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며, 그들과 협업하는 일도 생기지 않겠느냐”고요. 그만큼 그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깁니다.

너무 멀리 나갔다고요? 그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 우리 자신이 RM이 되어 직접 코스를 짜보는 것은 어떨까요. 뜻밖의 공간과 작품을 만날 기회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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