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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 외교의 오만이 미국 영향력 쇠퇴 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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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정치와 네오콘 외교의 교훈

미국 네오콘들. 왼쪽부터 딕 체니 전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네오콘의 오만은 미 패권을 실추시켰다. [중앙포토]

미국 네오콘들. 왼쪽부터 딕 체니 전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네오콘의 오만은 미 패권을 실추시켰다. [중앙포토]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2018년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재앙적 사건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그걸 막으려 노력했는지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2018년 2월 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미국이 북한의 “즉각적 위협(immediate threat)”에 직면하고 있기에 선제공격을 해도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위기 국면을 협상 국면으로 바꾸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때였다.

미국에 무조건 맞추거나 싸잡아 비난하는 외교는 한계 #미국을 움직여 우리 쪽에 맞추려는 적극적 자세 필요 #미 정계·관계·의회에 포진한 현실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네오콘들은 맨투맨 식으로 설득하는 체계적 외교 펼쳐야

그로부터 2주쯤 후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다루는 외교적 옵션은 북한 체제를 종결시키는 것뿐이고 그 결과 전쟁이 나도 그것은 미국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이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음에도 역대 공화당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18년 4월 9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과격한 그의 견해가 미국 정치권과 정책 서클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받아왔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각인 신보수주의(네오콘) 시각의 뿌리는 깊다. 네오콘의 대부라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에 의하면 1970년대 중엽 처음으로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시각은 2차 세계대전 이전 소련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싹터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대체로 강한 도덕적 기준과 선악 관념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도덕적 선명성을 중시하는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사상적 후예임을 자처한다. 이러한 시각은 도덕이나 이념보다는 권력과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실용적 현실주의 시각과 대척점에 있다.

선악 개념으로 세계 보는 네오콘

예를 들어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질곡에서 빠져나오려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현실주의자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소련과 군비 통제 협상을 하면서 데탕트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국제 무대로 끌어내 소련과 대결시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추구했다. 이로써 당시 반전운동과 해외 개입 축소의 고립주의 방향으로 가려던 민주당 조지 맥거번 대선 후보 중심의 정치적 좌파들의 허(虛)를 찌르려 했다.

그런데 정작 강한 반발은 우파 쪽에서 나왔다. 민주당 내 헨리 잭슨 상원의원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이나 공화당 보수 강경론자들은 쉽게 공산주의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며 데탕트 정책을 공격했다. 이들은 베트남전쟁 패배에도 불구하고 미국적 가치를 더욱 열심히 해외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대선을 1년 앞두고 현실주의자 키신저는 폴 월포위츠, 도널드 럼즈펠드, 딕 체니 등 네오콘에 밀려 1975년 가을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물러났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등에 대한 지미 카터 행정부의 외교 실패에 실망한 민주당 내 신보수주의자들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거 공화당으로 옮겨갔고 공화당 내 네오콘과 합쳐서 그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이들 네오콘의 영향력의 정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였다.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등은 네오콘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실용적 현실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었다. 2003년 네오콘들이 이라크 공격을 밀어붙일 때 키신저의 후계자인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결국 무력 공격을 통해 정권 교체를 시도했고 친미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면 이것이 도미노처럼 중동 지역에 퍼져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시 네오콘들은 집요하게 북한과의 협상에 반대했다. ‘악의 축’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도덕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대화를 기피하고 압박 정책으로 일관했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필자는 부시 행정부 당국자들을 만나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지만, 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가 중거리핵감축(INF) 조약을 끌어내 평화에 기여한 레이건 행정부처럼 북한에 대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자, 협상을 통해 빨리 핵 물질 생산을 중단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모처럼 만의 6자회담 합의인 2005년 9·19 합의마저도 네오콘들의 대북 금융 제재로 무위로 돌아갔다. 다행히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과격한 레짐 체인지는 시도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처럼 북한도 공격하는 것 아니냐고 노심초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으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는 미국 정부의 확인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라크·아프간 전쟁은 미국 패권 하락 분기점

결국 이라크·아프가니스탄 공격은 미국 패권 하락의 분기점이 되었다. 도덕과 선악을 앞세운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식의 네오콘의 오만(hubris)이 미국 국력과 영향력 쇠퇴를 초래한 것이다. 2009년 초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극심한 후유증과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눈에 띄게 수동적·소극적 방향으로 변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그랬고, 한반도에서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방관 정책이 그랬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미국 리더십의 후퇴를 본격적으로 확인해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은 고립주의, 자국중심주의, 무(無) 전략의 시대로 진입했고, 그 후유증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목도하고 있다.

‘모 아니면 도’식 대미 외교 벗어나야

외교에 관한 미국 정가 논쟁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대미 외교와 관련하여 ‘모 아니면 도’식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여론주도층 일부에서는 네오콘이든 현실주의든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 미국에 맞춰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필자가 2003년도 장관 재직 시 어느 한 언론사는 네오콘 인사들의 주장을 전면에 걸쳐 소개한 뒤 그들에게 맞추지 않는 우리 외교를 아마추어 외교라고 비판했다. 그 기사에는 ‘한국의 입장’이라는 것이 아예 빠져있었다.

동맹은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편이 미국이라 해서, 항상 정책적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 설득을 통해 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우리 정부가 그렇게나 권했던 실질적 대북 협상을 거부하며 3년 세월을 허송했다. 결국 2006년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해버린 후에야 베를린에서 양자 회담을 시작했고 그 결과가 2007년 2·13 합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무조건 미국을 비판하고 나선다. 미국 내 우호적인 세력과 연대하고 반대쪽을 설득하려는 전술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양국 모두에 득이 되는 타협점이 있어도 그것을 찾지 못하고 불신만 쌓여간다. 이 두 가지 접근법 모두 문제가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 경협은 중요하다. 그러려면 북한이 비핵화로 나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처럼 비핵화는 영변 지역만 부분적으로 할 테니 제재 해제는 전면적으로 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미국도 행정부에 볼턴 같은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어 북한에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를 요구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북·미 간 신뢰가 바닥 수준인데 “어떻게 당신네를 믿고 비핵화 먼저 하라는 말이냐”며 북한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건은 미국에 무조건 맞추는 것도,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쉽지 않지만, 미국을 움직여 우리 쪽에 맞추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정계·관계·의회·싱크탱크에 포진해 있는 유연한 실용적 현실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네오콘들은 맨투맨 식으로 설득하는 체계적인 총력전 외교를 펼쳐야 한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