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백선엽·박원순에 대한 정권의 극과 극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하루 차이로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여권이 180도 다른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사수한 백 장군에 대해선 추모 논평조차 내지 않은 반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직후 세상을 떠난 박 시장에 대해선 닷새에 걸쳐 당·정·청 고위층이 총출동해 ‘국민장급’ 장례를 치러줬기 때문이다.

호국 영웅은 홀대, 박 시장은 미화 급급 #당·청이 대놓고 국론 분열 부추기는 격

정부는 백 장군의 장례를 국군장 아닌 육군장으로 치르고, 유해도 서울 아닌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훈처는 “서울현충원은 묘역이 부족한 데다 백 장군 본인이 대전을 원했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고 남덕우 전 부총리 등이 묻힌 서울현충원의 ‘국가유공자 묘역’에 백 장군을 안장하는 방안이 추진돼 왔다. 그러다 이 정부 들어 철회됐고, 여권 안팎에선 백 장군을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백 장군이 이런 움직임을 알고 스스로 대전을 장지로 택했을 공산이 크니 안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전현충원에 세워질 백 장군의 묘가 언제라도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김홍걸·이수진 등 민주당 의원들이 국립현충원에서 친일파의 유해를 이장시키는 ‘파묘’ 입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장군이 일제 지배하인 1943년 만주군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독립군은 만주를 떠난 상태였고, 백 장군 본인도 “내가 싸운 상대는 중공 팔로군”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설령 ‘과’가 있더라도 ‘공’을 뛰어넘을 수준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그의 친일 경력만 부각하며 추모 성명 한마디 내지 않았다.

반면에 박 시장에 대해선 여권은 서울광장에 대규모 분향소를 설치해 시민들의 조문을 유도하고,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영결식에서 직접 조사를 낭독하는가 하면, 곳곳에 추모 현수막을 걸고 ‘맑은 분’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청와대 반응도 극과 극이다. 박 시장에게 성추행당했다는 고소인 측이 13일 폭로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별도 입장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박 시장에 대해선 “사법연수원 동기로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인데 너무 충격적”이란 애도 메시지를 냈지만, 백 장군에 대해선 조문 여론을 일축하고 비서실장을 빈소에 보내는 선에 그쳤다. 반면에 백 장군은 육군장을 치른다면서 육군본부조차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아 국민이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분향소를 만들고 청년단체들이 지키기에 나선 형편이다. 호국 영웅 백 장군과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시장에 대한 여권의 너무나 대조적인 대응에서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국론분열이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