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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눈에서 손으로 귀로…천천히 감겨오는 LP의 매력

중앙일보

입력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LP를 들고 포즈를 취한 두 사람. 애니메이션 LP는 깜찍한 캐릭터와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지곤 한다.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LP를 들고 포즈를 취한 두 사람. 애니메이션 LP는 깜찍한 캐릭터와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지곤 한다.

CD 크기의 두 배가 넘는 동그란 판을 기계 위에 올립니다. 뾰족한 바늘이 판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 ‘찌직’ 작은 마찰음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죠. 이게 뭐냐고요? 바로 LP 레코드(Long Playing Record)입니다. 레트로·아날로그 열풍이 음악 시장에까지 번지며 40~5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LP가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죠. 방탄소년단(BTS)·아이유·빅뱅 등 아이돌 가수부터 라이언 킹·토이스토리·라푼젤 같은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LP가 발매됐어요.

사실 LP는 재생을 위해 특정 장비가 필요하고 보관이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죠. 용량도 한정적이에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수천 곡의 노래를 스트리밍(음악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을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매체죠. 그런데도 LP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음악을 좋아하는 김가은·김윤하학생기자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섰습니다.

해외 팝스타부터 국내 가수·애니메이션 OST 등 다양한 장르의 LP가 가득한 바이닐앤플라스틱 매장.

해외 팝스타부터 국내 가수·애니메이션 OST 등 다양한 장르의 LP가 가득한 바이닐앤플라스틱 매장.

두 사람이 찾은 곳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바이닐앤플라스틱(VINYL&PLASTIC)’입니다. 1만종 이상의 바이닐과 CD를 판매하는 곳으로, 스트리밍이 아닌 실제 음악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에요. 바이닐앤플라스틱에 들어서자 벽면을 수놓은 수많은 LP가 시선을 사로잡았죠. LP가 생소한 가은·윤하학생기자를 위해 담당자가 설명에 나섰어요.

“LP란 ‘Long Playing Record’의 약자예요. 직경 30㎝(약 12인치)의 플라스틱 판에 머리카락보다 얇고 촘촘한 소리 골을 새겨 녹음하죠. 턴테이블(LP를 올려놓는 회전판)에 달린 바늘이 이 소리 골을 따라 진동하면서 전기 신호를 보내면 음악이 재생됩니다. 소리의 연속적인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LP와 외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레코드의 크기와 재생 시간이 다른 EP(Extended Playing Record), SP(Standard Playing Record)도 있어요. LP는 8곡 이상의 정규 앨범, EP는 4곡 정도의 미니 앨범, SP는 1곡이 실리는 싱글 앨범이라고 볼 수 있죠. 외국에서는 LP·EP·SP를 통칭해 ‘바이닐 레코드(Vinyl Record)'라고 부르는데요. 바이닐은 레코드를 만드는 재료를 뜻합니다. 1948년 미국 콜롬비아사에서 비닐계의 재질로 된 LP를 발매하면서 바이닐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우리 가게 이름인 ’바이닐앤플라스틱‘은 LP를 만드는 바이닐, CD의 재료인 플라스틱을 합쳐 만들었답니다.”

LP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턴테이블이 꼭 필요하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턴테이블 작동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LP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턴테이블이 꼭 필요하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턴테이블 작동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학생기자단이 본격적으로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빌리 아일리시 노래 알아요!” “아리아나 그란데도 들어봤어요.” 오래된 LP만 가득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실시간 음원 차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유명 팝스타의 앨범이 가득했죠. LP가 이제 막 다시 사랑받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LP 시장은 매우 큰 편이에요. 소중 친구들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영향력 있는 음악 차트죠. 이렇게 큰 음악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LP 발매에서도 우리나라보다 적극적입니다. 아델,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 많은 해외 팝스타가 LP를 발매했어요.

“우리나라의 LP 시장이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가수들의 LP를 살펴본 윤하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음악 시장이 작기 때문이죠. K-팝이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판매량 자체가 적습니다. 디지털 음원이 인기를 끈 것도 한몫했죠. 이런 상황에서 CD에 LP까지 발매하는 건 가수에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에요. 팬덤이 확실하거나 스스로 보여주고픈 음악적 색깔, 야망이 강한 가수만이 LP를 만들곤 합니다.”

가은·윤하 학생기자가 지난 2016년 사망한 영국의 유명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전시관 앞에 섰다.

가은·윤하 학생기자가 지난 2016년 사망한 영국의 유명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전시관 앞에 섰다.

하지만 최근 판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LP 판매량은 2008년 500만장에서 2015년 3200만장으로 6배 이상 급성장했습니다. 중장년층에게 LP는 과거의 향수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해요. LP를 구매해 커버 아트를 감상하고 속지에 쓰여 있는 가사를 읽어봅니다. 턴테이블에 올려서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죠. LP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이에요. 여기에 자연스럽고 풍부한 음질이 아날로그한 매력을 더합니다. CD나 디지털 음원과 비교했을 때 LP의 음질이 깨끗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LP판과 바늘이 부딪칠 때 나는 잡음이 묘한 끌림을 선사한다는 평이 많죠.

해외 팝스타의 LP가 늘어선 진열대를 지나 옆으로 이동했어요. 어린 친구들도 알만한 애니메이션 LP가 가득했죠. 지난해 실사판으로 개봉한 알라딘부터 라이언 킹·토이스토리·무민·이웃집 토토로 등 깜찍한 커버로 중무장한 LP를 본 학생기자단의 손이 다급해졌습니다. 각자 재미있게 본 LP를 집어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어요. 일반적인 LP판은 검은색을 띠고 있지만요. 몇몇 LP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꾸며져 있거나, 반투명한 형태로 제작되기도 한답니다. 알록달록한 색 덕에 턴테이블에 올려놓았을 때 인테리어 소품 효과도 있어 소장 가치가 높죠.

김윤하(왼쪽)·김가은 학생기자가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스페셜 LP를 감상하고 있다.

김윤하(왼쪽)·김가은 학생기자가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스페셜 LP를 감상하고 있다.

학생기자단은 LP 하나를 골라 청음 해보기로 했어요. 진열된 LP 중 일부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했죠. 두 사람이 집어 든 앨범은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스페셜 LP였습니다. 우선 LP를 턴테이블 중앙 스핀들에 끼우고요. 앨범 RPM에 맞춰 노브를 조작합니다. 잠금장치 해제 후 리프트 레버를 올려 헤드 셸을 LP판 위로 수평 이동해요. 리프트 레버를 내리면 헤드 셸이 LP의 오목한 부분에 안착하고, 음악이 흘러 나오죠. 난생처음 LP로 음악을 들어본 두 사람이 신기한 듯 말했어요. “CD보다 웅장한 느낌이 있어요.”(가은) “살짝 지직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아요.”(윤하)

CD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학생기자단. 두 사람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레드벨벳의 CD도 찾아볼 수 있다.

CD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학생기자단. 두 사람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레드벨벳의 CD도 찾아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소중 친구들에게도 익숙한 CD가 가득했어요. 그룹 레드벨벳의 팬인 윤하학생기자가 CD를 이것저것 구경하며 즐거워했죠. 가은학생기자는 “최근에 나온 방탄소년단 앨범은 다 샀어요”라며 자랑했어요. “CD는 LP보다 음질이 깨끗하고 선명하죠. LP는 보관에 손이 많이 가요. 스크래치가 나거나 형태가 변형될 경우 바늘이 튕겨 나가기도 합니다. 반면 CD는 견고하죠. 요즘에는 CD가 음악 감상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굿즈(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로 기능하고 있는데요. 예쁜 포토카드, 다채로운 앨범 커버 등을 더하는 식이에요. 해외에는 거의 없는 국내 음반 시장만의 특징입니다.”

두 사람은 LP와 CD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기 위해 또 한 번 청음 했어요. 가은학생기자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친구’를 감상했죠. “LP보다 깨끗하게 들리지만, 디지털 음원과 비슷해 많이 들어본 느낌이에요. 색다른 음질의 LP가 더 기억에 남아요.” 이어진 공간에서 카세트테이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는 디지털 음원이 대중화하기 전 큰 사랑을 받은 매체죠. A, B 두 개의 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반대 면의 음원을 듣기 위해서는 카세트테이프를 뒤집어 꽂은 후 재생해야 해요. CD나 LP처럼 다음 곡으로 바로 넘어갈 수 없고, 되감기·빨리 감기·재생 버튼을 눌러 직접 조정해야 한답니다. 음질은 가장 떨어졌어요.

빠르고 간편한 것만이 최고로 여겨지는 디지털 사회에서 LP의 재유행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작가 데이비드 색스는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빠른 변화'와 '새것'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아날로그 세상으로 회귀를 지향한다고 설명했어요. LP가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LP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손과 발과 눈과 귀, 심지어 레코드 표면에 쌓인 먼지를 불기 위해 가끔은 입도 사용해야 하죠. 스마트폰으로는 접할 수 없는, 느리지만 신선한 즐거움입니다. 소중 친구들도 오늘만큼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느긋한 LP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레트로 감성 물씬, LP를 만날 수 있는 곳

회현 중고 LP 상가(서울시 중구 소공로 63)
서울 공식 관광사이트에도 소개된 LP 명소. 70~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회현동 지하상가에는 수천 장의 LP와 CD가 가득하다. 매장 안에 있는 턴테이블로 LP를 직접 감상할 수도 있다.

돌레코드(서울시 중구 마장로 9길 49-29)
벽장 안을 빼곡하게 채운 LP와 CD가 레트로한 느낌을 더해주는 곳. 15만장에 달하는 LP판과 CD 5만장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찾기하듯 이것저것 뒤적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라스트찬스(서울시 동대문구 천호대로4길 21)
서울 풍물시장 최대의 LP음반 전문매장. LP판과 인생을 함께한 할아버지의 가게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하기 힘든 희귀한 앨범을 취급해 LP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 곳.

김밥레코즈(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길 90)
다양한 장르의 해외 수입 음반을 판매한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알짜배기 음반을 찾을 수 있다. ‘동네 도서관처럼 편안하게 음악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의 말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보수동 책방골목(부산 중구 대청로 67-1)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래된 골목 곳곳에 옛 LP판을 파는 가게가 숨어있어 시간 여행하는 기분으로 구경하기 좋다. 저렴한 가격은 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CD와 디지털 음원 외에 다른 매체로 음악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어요. LP로 음악을 감상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요. CD나 음원보다 음질은 조금 떨어지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같은 노래도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바이닐앤플라스틱에는 제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CD도 있었어요. LP와 음악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가은(경기도 신봉초 4) 학생기자

LP와 턴테이블은 사진과 책으로만 접했었는데, 취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우리나라가 해외보다 LP 시장이 좁다는 게 아쉬웠죠. 해외에서는 장르별로 다양한 LP가 발매된다고 해요. 애니메이션 OST를 담은 LP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소중 친구들이라면 꼭 한 번 LP와 레트로의 매력을 꼭 느껴보길 바라요.  김윤하(경기도 매봉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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