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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표는 버럭, 여성 의원은 침묵…거꾸로 가는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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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박원순 시장 빈소에서 기자를 향해 “XX자식 같으니라고”란 말을 했다. 이날 조문을 마치고 빈소에서 나온 이 대표는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예의가 아니다”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지만, 질문한 기자를 계속 노려보며 “최소한 가릴 게 있다”며 호통치듯 불쾌감을 표한 뒤 기자 쪽으로 다가가려는 모양새까지 취하다 주변의 만류로 자리를 떴다.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다. 100여 명의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의 막말에 가까운 표현과 고압적인 태도는 도대체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질문 기자에게 고압적 태도로 불쾌감 표시 #여권, 피해자 2차 가해 우려 발언 쏟아내

박 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만큼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이 대표의 ‘오랜 친구’ 박 시장의 사정만 살필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그런 언행이 나올 수 없다. 언론에 대한 부적절한 행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표는 2012년 민주통합당 당 대표 경선 당시 라디오 생방송 도중 대본에 없는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2018년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혜경궁 김씨’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다 기자의 마이크를 밀쳐 논란이 됐다.

이 대표의 부적절한 태도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할 발언이 나오고 있어 걱정스럽다. “맑은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박범계 의원), “공과는 누구나 다 있다”(조응천 의원)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당이 내건 추모 현수막에는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글귀도 있다. 여권 인사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맑은 분이다’ ‘뜻을 기억하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심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5일장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걸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50만 명을 넘겼다는 점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런 가운데 과거 여성 인권이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적극 대응했던 여성 의원들은 박 시장 사건 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빈소를 찾은 여성 의원들은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백혜련 의원),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전현희 권익위원장)이라며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여성단체 대표에다 성범죄 피해 여성을 지원한 단체의 대표 출신도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다. 남의 일에 대해선 엄격한 이들이 내부의 일이라고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닌가. 민주당의 사려 깊지 못한 대처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