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영민 "백선엽, 한국군 발전 증인" 조문…여당은 여전히 침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ㆍ미 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신 백선엽 장군을 애도합니다.”

백선엽 장군 빈소 여야 정치인 발길 #이해찬 "지방 일정 때문에 조문 늦었다" #생전 행적·장지 논란 놓고 시각차 여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왼쪽부터)이 12일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서울 아산병원의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왼쪽부터)이 12일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서울 아산병원의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12일 오후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백 장군이 타계한지 이틀째, 여당이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에서 나온 '입장'인 셈이다. 노 실장은 이날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노 실장은 백 장군 유족들에도 “고인은 한ㆍ미 동맹의 산증인이고, 한국군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조의를 표했다. 이어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 여사를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엔 입을 다물었다. 전날인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이날 빈소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백 장군에 대한 평가에선 여전히 입장차를 보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현재까지 백 장군 별세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백 장군의 친일 경력을 내세워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의원과 송갑석 대변인과 함께 오후 8시 30분쯤 느지막이 조문했다. 이 대표는 헌화 후 “장군님과 2005년 총리공관에서 저녁을 모시고 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그때만 해도 정정하셨다”고 회고했다. 또 유가족과 접견실에서 만나는 자리에서 2005년 백 장군과 위례신도시 부근 군 복지시설 조성 문제로 만난 것을 떠올리며 “당시 백 장군이 대단히 후배를 아끼는 분이었고 굉장히 건강했던 분이었다”고 말했다고 송 대변인이 전했다. 또 “조금 더 일찍 올 수 있었는데 지방에 머무르고 있어 다른 일정과 맞추다 보니 조문이 늦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백선엽 장군 빈소의 방명록에 남긴 글. 이철재 기자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백선엽 장군 빈소의 방명록에 남긴 글. 이철재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 17명과 함께 조문했다. 김 위원장은 “백 장군은 6ㆍ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혁혁한 공로를 세운 분”이라며 “장군의 서거를 굉장히 애도하고, 최대한 예우를 갖춰 장례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지 문제에 대해 “백 장군이 생존하셨을 때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국군묘지를 방문해 전사한 장병과 같이 안장되기를 원했고, 아마 (묏자리까지) 함께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정부가 무엇 때문에 서울에 있는 현충원에 안장을 못 하게 하고 (대전에)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빈소엔 정복을 입은 현역 군인뿐만 아니라 예비역,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전날인 11일 조문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노인숙 여사를 만나자 품에서 백 장군의 2018년 백수(白壽ㆍ99세)연 때 사진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당시 그가 백 장군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해 축하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다. 해리스 대사는 “항상 갖고 다니는 사진”이라며 “백 장군을 이렇게 떠나보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생전에 그가 밝힌 뜻에 따른 것이다. 백 장군은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내심 6ㆍ25 전쟁 전우들과 함께 서울현충원(동작동)에 묻히길 바라기도 했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는지 “어떤 특혜 없이 대전현충원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백 장군에 조의를 표한 뒤 “고인은 6ㆍ25전쟁에서 큰 공훈을 세웠다”며 “정부는 육군장(葬)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잘 모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의 백선엽 장군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서다 일부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의 백선엽 장군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서다 일부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장지나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재향군인회(향군)는 이날 “국민 모두가 존경하고 추앙받아야 할 분을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경력만을 이유로 매도하고 폄하하는 것은 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국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향군은 ”문재인 대통령은 6ㆍ25 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전쟁 영웅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번영된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며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백 장군의 조문과 국립묘지 안장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집권여당은 입장이나 논평 한마디 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육군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육군협회는 백 장군을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에 안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육군협회는 “백 장군은 평소 6·25전쟁 때 싸운 전우들과 함께 묻히고 싶어 했다”며 “서울현충원은 6·25전쟁 희생 장병을 모시고자 만든 국군묘지로 출발한 곳으로 백 장군과 함께한 많은 전우들이 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

반면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 연합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은 12일 정부가 백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을 취소해야 한다며 “진정 나라를 위해 살아온 영웅이었다면 조용히 선산에 묻히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고 백선엽씨에게 믿기 힘든 국가 의전이 제공되고 있다”며 “그가 갈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라고 주장했다.

한편, 백 장군의 영결식은 오는 15일 오전 7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다. 해리스 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영구차는 서울현충원, 옛 육군본부(현 전쟁기념관), 주한미군 사령부(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들른 뒤 대전현충원에 도착한다. 캠프 험프리스에선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사령관이 운구를 맞을 예정이다.

안장식에선 특별한 행사도 마련된다. 백 장군이 6ㆍ25 전쟁 때 참가했던 다부동 전투, 임진강 전투, 대관령 전투 등 8개 전투 전적지의 흙을 참전 용사와 한·미 현역 군인들이 함께 뿌릴 예정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