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적당히 바쁘지도 심심하지도 않게…산막 삶의 묘미

중앙일보

입력 2020.07.12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59)

어린 암탉이 첫 알을 낳았다. 정말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초란 2개다. 아 생명의 신비여! 감탄과 경이가 가득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는 달걀 없이 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달걀 얻어먹는 재미로도 닭을 키우는데, 자유롭게 살라며 풀어놓으니 도통 얻어먹을 수가 없다. 바깥 이곳저곳에 낳아 버리는 게다. 그래서 가끔 가둬 둔다.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이다. ‘알을 낳거라! 그럼 내보내 주마’ 내 속마음도 모르고 울어대는 탓에 개를 묶어두고 닭을 푼다. 닭들이 아주 잘 논다. 계란도 꺼내 들기름 넣고 먹어본다. 이 신선함이여! 맛있다. 산막 주위엔 산딸기가 천지다. 그냥 따서 먹는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좋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산막 생활. [사진 권대욱]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산막 생활. [사진 권대욱]

곡우가 오면 아주 잘 먹는다. 진수성찬이다. 그리고 초간편이다. 한 양동이 끓여 냉동한 곰탕을 해동해 파와 마늘을 넣어 아주 잘 먹는다. 무엇이든 마냥 좋은 건 없다. 반드시 나쁜 것도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걸 잘 일깨우는 산막은 학교다. 그래서 스쿨이다.

산막 리모트 워크를 시작한 지도 어언 3개월이 되어간다. 베테랑답게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적응이란게 그렇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너무 무료하지도, 너무 바쁘지도 않게 일과 삶을 잘 배분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곳의 일을 보다 보니, 때론 바쁠 때도 있고 너무 한가하여 무료할 때도 있다. 너무 바쁠 때는 전매특허 멀티 워커의 신공을 발휘하여 극강의 효율을 발휘하기도 하고, 너무 느슨한 때는 잔디 깎고 풀 베며 읽고 쓰고 말하고 만들며 그 시간을 촘촘한 그물로 엮기도 한다. 이 또한 쉽지는 않다. 그나마 과거 3년간 홀로 지냈던 내공과 나름의 기술을 더해 그럭저럭 즐겁게 해 나간다.

여러 즐거움 중에 밥 해 먹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는 재미다. 습관적으로 후다닥 바삐 차리고 바삐 먹고 치우는 게 익숙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리 바삐 서둘 이유가 전혀 없더란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제법 차려 먹기까지 하고 있다. 그래도 멍한 시간은 싫은지라 시간 걸리는 요리를 준비하고 끓이는 동안은 유튜브를 만든다. 행복한경영이야기처럼 포맷이 있고 텍스트가 있는 간단한 콘텐츠도 만들지만, 녹음하고 업로드하고 공지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다. 콘텐츠도 만들어 내야 하고 길이가 8분에 가까운 영상 작업은 최소 세 시간은 걸린다. 매일 두세 개 영상을 올리니 시간은 정말 잘 간다.

그런데도 가끔 무료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럴 땐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이젠 이런 걱정도 잠시 접어야 할 것 같다. 합창단이 연습을 재개한다 하니 무조건 화요일엔 서울에 있게 될 것이고, 꼭 필요한 모임이나 행사나 사업적 미팅이 있을 때는 또 올라갈 것이니 아마도 사흘 정도는 서울에서 일을 볼 것 같다. 그렇게 되면 3도 4촌이 되는 것이니, 아마도 전원생활 유지의 마지노선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 이삼일을 매우 콤팩트하게 채울 생각이다. 가급적 약속은 그 기간 중 집중하고, 집중적으로 일을 볼 생각이다. 다행히 살아온 연륜이 제법 되다 보니 다들 사정을 많이 봐주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유튜브 영상을 세 개나 올리고, 밥도 잘 차려 먹고, 때때로 낮잠도 잘 잤는데도, 이제 겨우 4시 50분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 머리가 띵함을 느낀다. 이럴 때 특효약은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거다. 산막에 일거리야 정말 많다. 꼽자면 정말로 끝도 없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머리 맑아질 정도만 찾는다. 그렇다. 풀을 좀 베는 거다. 아마 한 시간 정도면 되겠다 싶다.

씻고 저녁 먹고 뉴스 보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 네 시쯤 된다. 물론 중간에 한 번쯤은 깨게 된다. 나이가 들었구나 또 느낀다. 그때부터 또 일과가 시작된다. 페이스북, 유튜브, 카톡 등 메신저에 댓글도 달고, 아침상 차리고, 유튜브 만들고, 개들과 닭들 돌보고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때가 된다. 제법 정성을 들여 상을 차린다. 오늘은 아침에 잘 끓여 놓은 된장국이 있으니 텃밭 푸성귀에 된장 비벼 비빔밥을 만들어 볼까 한다.

외롭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 곁을 지키는 모카, 함께 마무리하는 하루가 좋다.

외롭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 곁을 지키는 모카, 함께 마무리하는 하루가 좋다.

간 김에 텃밭에 물도 좀 주고, 잡풀도 뽑고, 오후엔 이것저것 업무도 본다. 전화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산중에 앉아 아무 지장 없이 일을 보다 보면, 참 좋은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해 거름해지면 모카를 데리고 의자에 누워 지는 해를 바라본다.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생각이 글도 되고 유튜브도 된다. 산막 생활. 절대로 너무 바빠서도 무료해서도 안 된다. 빼고 보태고 적절히 완급을 조절하는 기술, 그것을 삶의 기술이라 부르겠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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